간절하게 염원했던 사행길을 간 강세황의 그림
[한국문화신문 = 정석현 기자] 조선시대를 통틀어 총 500여 회에 걸쳐 중국에 파견 ▲ 《영대기관첩》 제목, 강세황, 조선 1784년, 종이에 먹, 23.3 × 54.8 cm 조선시대에 국경을 건너 남의 나라 땅을 밟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행(使行)은 타문화를 접하는 공식적인 통로로 거의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 사행단의 규모는 정사(正使),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 역관(譯官), 의관(醫官), 화원(畫員) 등 정관(正官) 30여 명을 포함하여 3백 명 내외에 이르렀다고 하며, 조선시대를 통틀어 총 500여 회에 걸쳐 중국에 파견되었습니다. 수백 명이 함께 중국으로 출발해서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조선에 돌아오기까지 다섯 달 이상 걸리는 대장정의 길이었습니다. 명나라 때는 천자(天子)에게 조공 간다는 의미를 담아 ‘조천(朝天)’이라 하였고, 청나라 때는 연경(북경을 말함)에 가는 일이라 하여 ‘연행(燕行)’이라 하였습니다. 조천과 연행 모두 ‘중국 사행’을 뜻하는 말이지만, 연행에는 조공관계를 생략하고 좀 더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고자 했던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고민과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