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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

나라의 통치 철학을 알 수 있는 자료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 추천 소장품 8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왕실 문화의 보고, 외규장각

 

조선의 22대 왕 정조(正祖)는 1776년 25살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오른 해에 규장각을 정식 국가기관으로 발족하였습니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의 왕실 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으로 출발하여 출판과 정책 연구의 기능까지 발휘한 특별한 기구입니다. 이후 1782년에 강화도 행궁(行宮)에 외규장각을 완공하여 왕실의 중요한 자료들을 옮겨서 더욱더 체계적이며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였습니다. 규장각에 보관하던 임금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강화도로 옮겨진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이로써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분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어 이곳을 ‘규장외각(奎章外閣)’, 또는 ‘외규장각(外奎章閣)’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외규장각에는 어보(御寶, 국새), 교명(敎命, 왕비 또는 세자 등을 책봉하던 임금의 명령), 어책(御冊, 왕비를 책봉하거나, 임금과 왕비ㆍ대비ㆍ왕대비ㆍ대왕대비 등에게 존호나 시호 등을 올릴 때 그 내용을 새겨 첩으로 엮어 만든 것), 어필(御筆, 임금의 글씨), 의궤, 지도 등 왕실 관련 자료들이 집중적으로 보관되게 되었으며, 철종 연간에 파악된 외규장각 소장 도서는 약 6천 권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의궤》,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

 

《의궤》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란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입니다. 왕실과 나라에서 의식과 행사를 연 뒤 준비, 실행 그리고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그림이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의궤》의 제작 배경에는 의식이나 행사의 모범적인 전례(典例)를 만들어 후대 사람들이 예법에 맞게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의미가 있는 한편 사업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하여 이후에 참고하여 시행착오 없이 원활하게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궤》는 철저한 기록정신의 산물로서 예(禮)를 숭상하는 유교문화권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나라의 통치 철학과 운영체계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의궤》는 조선의 건국 초기인 15세기부터 만들어졌으나 현재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것들만 남아 있습니다. 17세기 이후 《의궤》는 꾸준히 제작되었고, 18세기에 들어오면 그 종류와 숫자가 더욱 늘어납니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되어 5~9부 안팎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임금이 친히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 1부 외에 나머지 분상용은 의정부, 춘추관, 예조 등 관련 부서와 봉화 태백산(奉化 太白山), 무주 적상산(茂朱 赤裳山), 평창 오대산(平昌 五臺山), 강화도 정족산(江華島 鼎足山) 등의 사고에 보내졌습니다. 통상 어람용은 1부를 제작하는데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라는데 그 중요성이 매우 큽니다.

 

 

임금이 보던 책,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임금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御覽用)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됩니다. 통상 어람용은 1부를 제작하는데, 어람용을 분상용과 비교해 보면 필사, 재료, 장정 등에서 그 수준이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종이는 어람본의 경우 고급 초주지(草注紙)를, 분상용은 초주지보다 질이 낮은 저주지(楮注紙)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렇듯 고급 종이에 해서체로 정성껏 글을 쓰고 천연물감으로 곱게 그림을 그린 뒤 고급 비단과 놋쇠물림(경첩)으로 장정한 외규장각 《의궤》는 당대 으뜸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보여 줍니다. 특히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는 나라 안팎에 없는 유일본이 상당수 포함되어 그 중요성이 더욱 큽니다.

 

 

의식의 진행과 《의궤》의 제작

 

조선시대에는 거행했던 국가 의식과 행사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의궤》를 제작하였습니다. 《의궤》의 종류는 왕의 일생과 관련된 것, 각종 제례와 의식과 관련된 것, 편찬 사업이나 건축과 관련된 것 등이 있습니다.

 

왕실의 각종 의식 및 행사를 집행하기 위해서 우선 임시기구인 도감(都監)을 설치하였습니다. 도감에는 일을 총괄하는 도청(都廳)이 있고, 도청 아래에는 일방(一房), 이방(二房), 삼방(三房), 별공작(別工作), 수리소(修理所) 등 업무를 분담하는 작은 조직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도감은 여러 관청의 관리들을 망라하여 조직하는데 임시로 설치하므로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총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 1인은 정승급에서 임명하였으며, 부책임자급인 제조(提調) 3~4명은 판서급에서 맡았습니다.

 

의식이 완료되면 도감은 바로 해체되어 의궤청(儀軌廳)이라는 기구로 바뀌었습니다. 의궤청은 도감에서 주관한 행사 전반을 정리하여 의궤를 작성하는 기구로, 행사 전반을 총괄한 도청 담당자들이 의궤청에 그대로 임명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의궤청은 도감에서 행사 중에 작성한 등록(謄錄), 행사 관련 문서들과 반차도(班次圖)를 수집하여 의궤를 작성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수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