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2017년 9월 13(수요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삼성동 소재 한국문화의 집(Kous)에서 열렸던 <김세종제 판소리보존회> 정례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이 보존회는 성우향의 뒤를 이어 김수연이 이끌고 있으며 문화재 종목의 전승과 보급 활동의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무대라는 점, 각 단체에서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 날의 발표회는 김수연 명창과 소속 회원들이 중심이지만, 서영호의 아쟁산조, 판소리 예능보유자 신영희 명창의 <김소희제 춘향가>, 왕기석 일행의 <흥보가 중 화초장>대목의 창극도 곁들여진 발표회였다는 점도 아울렀다. 그뿐만이 아니라 판소리 제곡(諸曲)들은 여러 명창들에게 전해지면서 각각의 특징이 실리고 첨삭되어 더 세련된 모습으로 후대에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김세종제 춘향가>는 이전의 송흥록으로부터 비롯된 동편제 소리를 더욱 가다듬었다는 점, 김세종제의 춘향가는 김세종, 김찬업, 정응민과 같은 뛰어난 명창들이 짠 것인 만큼, 옛날 명창들의 더늠이 고루 담겨 있고, 조(調)의 성음이 분명하며 부침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막부시대(여기서는 에도시대‘1603~1868’를 말함)에는 막부의 엄격한 규제로 아무나 목화솜으로 옷을 해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겨울이 길고 추운 지방인 아오모리 사람들은 마를 심어 그것으로 옷을 해 입어야 했지요.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겨울에 숭숭 바람이 들어오는 마옷을 입을 수 없게 되자 어머니들은 마옷감 위에 코긴사시(자수의 일종으로 보온을 위한 덧누비)를 해서 보온성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막부에서 목화솜은 사용못하게 했지만 목화실은 허용하여 집집마다 코긴사시 붐이 일었지요. 그렇게 가족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긴 코긴사시는 쓰가루지방의 독특한 무늬로 남아 오늘날 ‘쓰가루코긴사시’의 전통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青森県 弘前市)에 사는 코긴사시의 명인 사토요우코 (佐藤陽子) 씨가 그의 자수전시관을 찾았을 때 들려준 이야기다. 전시관의 정식 이름은 <사토요우코코긴전시관(佐藤陽子こぎん展示館)>으로 이곳을 찾아간 날은 지난 8월 8일 오후 4시 무렵이었다. 히로사키시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자수전시관은 2층짜리로 된 아담한 가정집 같은 곳이었는데 1층에는 견학자들을 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연변대학 무대에서 인기를 모았던 김병혜 교수, 송효진, 김보배양과 이들이 부른 남도민요 중 <육자배기>와 <뱃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육자배기는 남도의 대표적인 노래로 듣기도 어렵지만, 부르기는 더더욱 어려운 노래라는 이야기, 김병혜는 대학원까지 판소리를 전공한 정통파 소리꾼으로 현재, 순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판소리 적벽가의 예능보유자였던 정미옥이나 심청가의 성창순으로부터 소리와 인생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효진과 보배 역시 완창 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실력을 갖춘 차세대 명창들로 이들은 지방에서 활동하며 이익 창출의 목표가 아닌, 지역의 문화 발전과 저변 확대를 위해 공연물을 기획, 제작, 출연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야기,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갈대향과 미르지무>, 순천 정원 박람회기간에 셋트장 상설 공연을 기획한 바 있는 <드라마틱> 등 등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했다. 또 미국이나 중국교류 공연에 이들 트리오가 참여함으로써 교류회가 탄력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은 전통문화의 해외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 사업이며 여기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역할이나 존재의 의미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에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있을까? 그런 곳이 있다. 아니 전기는 들어가는 데 전깃불을 거부하고 호롱불을 켜고 영업하는 곳이 있다. 호롱불이라고 한 것은 그런 분위기를 말하고자 함일 뿐 실은 램프불이다. 하지만 침침하기는 호롱불이나 램프불이나 매한가지다. 관서지방은 기온이 39도나 올라간다는 일기예보에도 아오니온천은 숙박 방에 솜이불이 놓여있다. 아오모리현(青森県) 아오니온천(青荷温泉)에 도착한 것은 지난 8월 11일 금요일 저녁 6시 무렵이었다. 구불구불 4킬로 이상의 편도 산길을 승용차로 달려 온천에 도착하니 슬슬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아오니온천은 전기로 대변되는 모든 문명의 이기가 작동되지 않는 곳이다. 텔레비전도 없고 물론 슬기전화(스마트폰)도 터지지 않는 곳이다. 대신 침침한 램프불이 방마다 걸려있고 현관이나 복도 역시 마찬가지다. 전날 크고 드넓은 아름다운 도와다호수(十和田湖)를 둘러보고 이 깊숙한 두메산골 온천에 도착했다. 산속이라 해가 매우 짧다. 6시부터 저녁 식사가 시작되는 대형 식당은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고 유카타(浴衣, 목욕한 뒤에 입는 일본옷)를 갈아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식탁에 앉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꼬리가 긴 잔서(殘暑, 남은 더위)도 차츰 물러가고 산양에는 제법 추색(秋色, 가을빛)이 깃들고 높아진 하늘은 한없이 푸르기만 하다. 농가 초가집 지붕 위에는 빨간 고추가 군데군데 널려 있어 추색을 더욱 짙게 해주고 있는가 하면 볏논에서는 어느새 ‘훠이 훠이’ 새를 날리는 소리가 한창이다.” 위 글은 “秋色은 「고추」빛과 더불어 「白露」를 맞으니 殘暑도 멀어가”란 제목의 동아일보 1959년 9월 8일 치 기사일부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다섯 째 <백로(白露)>인데 위 글은 백로 즈음의 풍경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백로는 “흰이슬”이란 뜻으로 이때쯤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지요. 백로부터는 그야말로 가을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때입니다. 이때쯤 보내는 옛 편지 첫머리를 보면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포도가 익어 수확하는 백로에서 한가위까지를 <포도순절>이라 하지요. 또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하는데 이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를 한 알, 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연변예술대학 교류회에서 송서(誦書)와 율창(律唱), 그리고 경기민요를 불러서 크게 호응을 받았던 이기옥 명창의 이야기를 하였다. 목공일을 하던 부친이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부르는 소리를 하루 종일 들으며 작업을 하는 바람에 어린 이기옥도 자연스럽게 경기민요를 듣게 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소리꾼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호연과 그의 큰아버지 이범석 선생, 묵계월 명창에게 배웠고, 송서와 율창은 유창 명인에게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 지난해에는 국악협회가 주최한 제22회 전국대회에서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기옥의 장점은 발음의 분명함과 흥겨움의 절정보다는 역동성을 느끼게 된다는 점과 풍부한 음량으로 강유(剛柔)의 표출이 일품이라는 이야기, 그는 항상 단정한 몸짓, 온화한 미소, 자연스러운 예절이 습관화 되어 있고,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인정 많은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 소리자체를 좋아하고, 소리를 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길인가를 깨달은 명창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연변대 같은 무대에서 인기를 모은 판소리 <심청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음력 7월 15일로 백중날인데 백종(百種)ㆍ중원(中元)ㆍ망혼일(亡魂日)ㆍ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부릅니다. ‘백종’은 이 무렵에 과실과 푸성귀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지요. 또 ‘중원’은 도가(道家)의 말로, 도교에서는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한 해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 합니다. 음력 1월 15일을 상원(上元), 7월 15일을 중원,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 하여 이를 삼원(三元)이라 부르며 별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제(醮祭)”라는 세시풍속이 있었습니다. 또 ‘망혼일’은 이날 돌아가신 부모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ㆍ음식ㆍ과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낸데서 유래한 것이며, ‘우란분절’은 불교에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는 날을 말합니다. 백중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송도지(松都志)》, 《송남잡지(松南雜識)》, 《경도잡지(京都雜志)》, 《규합총서(閨閤叢書)》, 《조선세시기(朝鮮歲時記)》, 《이운지(怡雲志)》, 《용재총화(慵齋叢話)》,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따위의 여러 문헌에 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코케시(일본의 전통 나무 인형)를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이곳 쓰가루 지역의 유명한 코케시(인형)작가 였습니다만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나무인형을 만드는 것을 무관심하게 봐왔고 흥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코케시 강사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고지마 리카(小島利夏) 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지난 8월 8일 오전 11시 기자는 아오모리에 있는 쓰가루전통공예관(津軽伝統工芸館)을 찾았다. 이곳에는 코케시 인형 박물관이 있었는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크고 작은 나무 인형이 2층 박물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고지마 리카 씨의 아버지이며, 코케시 인형 명장인 고지마 도시유키(小島俊幸1949~2012) 씨의 작품을 비롯하여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인형들은 모두 이름난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이다. 오뚝이처럼 생긴 나무 인형에 눈, 코, 입과 머리를 그려 넣고 옷모양을 그려 넣으면 완성되는 코케시 인형은 <다카하시문서(高橋長蔵文書)>(1862)에 코우케시(木地人形)라는 표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과의 교류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학회 조직 후에,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올 2017년도에도 한국과 중국 사이 정치적 문제(사드)로 인해 참석여부가 불투명했으나 소수의 인원이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중국 측에서는 김성이 교수의 「조선족 가요의 시대별 고찰」과 리홍관 교수의 「서도소리 공명가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김교수는 시대에 따라 유행하던 노래를 정리하고 악보와 함께 들려주어서 이해하기 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실연교류에서는 김은희의 해금독주 <도라지>, 리은희의 저대독주 <바다의 노래>, 리홍관의 남성독창 <우리집 곱돌장>과 <산천가>, 최미선의 가야금독주 <옹헤야>, 그리고 박춘희의 여성독창 <하늘 길, 바다길 모두 열렸네>가 열연되었다는 이야기, 특히 박춘희 교수는 연변의 1급 성악가답게 강약이나 농담(濃淡)의 조화, 강렬하고 폭발적인 역동성이 일품이었다는 이야기, 특히 그는“반가운 손님들이 오시는 오늘의 이 무대를 1년 전부터 기다려왔다는 인사와 함께 항상 이 교류 무대를 자청해서 서 왔다는 말 한마디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관절 땅이 얼마나 큰 겁니까?” 나는 요우코(陽子) 씨에게 물었다. “한 4천 평 정도될 거예요.” “네? 4천 평이요?” 요우코 씨 집은 아오모리현 고노헤(五の戸)의 주택가에서 좀 떨어진 숲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4천 평이나 되는 넓은 숲속에 달랑 요우코 씨 집 한 채뿐이었다. 집을 에워싼 숲 속에는 이름 모를 꽃 들이 활짝 폈다. 아! 정말 요우코 씨는 숲속의 요정 같았다. 미술관처럼 지어놓은 요우코 씨 집안에 들어서자 드넓은 숲 정원이 거실 통유리 너머 가득 펼쳐진다. 탄성을 지르며 소파에 앉자 그녀는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 따끈한 허브차를 내왔다. 여름이라지만 비가 내리는 아오모리는 마치 늦가을처럼 썰렁했는데 따스한 차가 제격이었다. “우리집 말인데요. 여긴 땅값이 싸요. 1평에 1만 원(한국돈) 정도랍니다.” 음... 그렇다면 4천 평이라면 4천만 원? 도쿄에 견줄 수 없는 싼 가격이다. 요우코 씨는 북적이는 도쿄의 삶을 정리하고 아오모리에 정착한지 10년째다. 드넓은 토지에 단독주택을 지어 정원에는 온갖 화초를 심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일본인들의 “로망”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이 부부는 가끔 도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