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밤 9시 30분이 넘자 기도와 간증 순서가 되었다. 제일 먼저 공동체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태백산 정상에 있는 단군성전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였다. 발표자는 여성이었는데 단군 성전을 무슨 사교(邪敎)의 거점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다음은 예수원에서 한 달 장기 체류를 허가받은 한 신학생이 자기의 신학적인 고민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젊었을 때 겪었던 고민을 회상시키는 간증이었다. 다음은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잠시 귀국한 젊은 선교사가 간증을 하였다. 낯선 선교지에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재미있게 소개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 돈 1만 원이면 몽골에서는 한 달 생활비가 된다고 한다. 결론으로 그는 불쌍하고 가난한 몽골인을 돕고, 선교를 열심히 하자고 호소하였다. 몽골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으나, 그러니까 불쌍하고 불행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가난은 경제적인 척도이지만 행복이란 물질적인 척도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만족도라고 볼 수 있다. 1인당 국민 소득이라는 척도로 재는 가난을 국가 사이에 견줄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중국인 한 달 봉급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대천덕 신부님의 부인(제인 그레이 토리, 한국이름: 현재인)은 그림을 공부했는데 학창 시절 대학의 메이퀸이었다고 한다. 제인은 1940년 여름 미국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청소년 모임에서 아쳐를 처음 만났는데, 제인의 기억에 아쳐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쳐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그가 종종 보내온 편지에는 ‘제인과 함께 티베트로 건너가 천막촌 생활을 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제인은 “아쳐가 나의 반려자일까 고민했었는데, 하나님이 어느 날 정말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화가로서의 꿈도 있었지만 아쳐와 함께 하는 삶이 더 소중하고 아름다울 것 같아서 아쳐와 결혼했다”라고 말했다. 그들 부부는 혼인하고 한 번도 싸우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데, 예수원에서 두 사람이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바빠서 오후 4시 반 차담 시간에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고 한다. 숙소인 석송관에 도착하여 이층 침실로 올라가 보니 군대 내무반식으로 마루를 깔았고, 한쪽에 베개와 이불이 쌓여 있다. 베갯잇과 이불보에 베개와 이불을 넣어서 이틀 동안 사용할 침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기차를 타기 전 대합실에 있는 책방에서 산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를 읽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칼슨이라는 심리 치료사인데 이 책은 1997년 저작으로 미국에서 5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짧은 글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직면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당시에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그 일의 결과에 따라서 세상이 크게 변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사소한 일이고 세상은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거나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며칠 전 아내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내는 여섯 자매 가운데 둘째니까, 언니 하나에 여동생이 넷이나 된다. 자매가 많다 보니 여러 가지로 좋은 일 나쁜 일이 일어난다. 최근에는 둘째 여동생과 무슨 일로 서운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자기가 동생을 생각하는 만큼 동생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3남 4녀의 장남인데, 역시 형제자매 간에 희로애락이 많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세상살이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들어가는 말: 강원도 태백시 백두대간 근처 깊은 산골에 예수원이라는 수행공동체가 있다. 필자가 50살이었던 2000년에, 나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철 어느 날,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하여 예수원에 2박 3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의 방문 기록을 우리문화신문 독자들에게 6회에 걸쳐 소개한다. 단, 오해할 독자들이 있을까 봐 사족을 단다. 이 이야기는 종교이야기가 아니다.(글쓴이) 내가 예수원에 대해서 처음 들은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가가 강원도고 장인어른이 태백시 황지 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근무하신 적이 있어서 아마도 처가에 갔다가 처음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원이라고, 태백시 근처 깊은 산속에 성공회 신부(Reuben Archer Torrey III, 한국 이름 대천덕)가 세운 기도의 집이 있는데, 신앙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그곳에 가면 안식을 되찾고 온다는 정도로 들은 것 같다. 예수원 사람들은 매우 자유분방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강요하지도 않고, 또 한 가족처럼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부터 예수원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