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53년(단종 원년) 궁녀들과 별감들이 서로 한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들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궁녀인 중비, 자금, 가지와 별감인 부귀, 수부이, 함로는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싹틔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궁궐 안에 소문이 돌아 감찰 상궁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들은 곧장 지금의 경찰서인 의금부에 끌려갔고, 의금부에서는 그들에게 ‘부대시(때를 가리지 않고 사형시킴)’라는 참형을 내렸다. 하지만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단종은 그들의 죄를 감해 주었다. 참형을 면한 궁녀들은 곤장을 맞고 평안도 강계에서 관비로, 별감들 역시 곤장을 맞고 함길도 부령진에서 관노로 살았다. 이처럼 궁녀들과 별감들 사이에서도 한글이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일 만큼 궁궐 안에서도 일상생활에 한글이 친숙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A Court Lady and a Lower Official Exchange Love Letters in Hangeul In 1453 (the first year of King Dan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court ladies and lower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말산을 아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구파발이나 연신내 쪽 사시는 분들에게는 그게 무슨 질문이냐고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질문이 된다. 답은 구파발역 1번과 2번 출구 앞에 있는 높이 132.7m의 나지막한 야산이다. 산 이름이 특이한데 ‘이말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에 ‘이말(莉茉)’ 곧 ‘말리(茉莉)’라는 흔히 ‘자스민’이라고 하는 꽃식물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라는 것이 은평구청이 설치한 안내판의 설명이다. 그런데 말리화면 말리화지 그것을 거꾸로 만들어 이름을 붙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는데, 누구는 '이말(莉茉)'이란 이름이 18세기 근간에 등장했고 그보다 먼저는 ‘이말산’(李末山)으로도 불렸다는 기록도 있다는 점을 들어 '이밀산'은 사람들이 그냥 입에서 입으로 불려오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붙였다는 말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동네 끝(里末)이라는 뜻으로 불리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에서 10리 이내에는 무덤을 쓸 수 없었고 여기서부터는 가능했다. 그러므로 이말은 한양도성에서 10리(里) 끝(末)에 있는 산이란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이 산을 필자가 참여하는 동아시아 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