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삼가 탄원서를 올리는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70살인데 집안은 원래 무척 가난하고 여러 아들이 있으나 품성이 모두 사납고 옹졸하여 늙을수록 신세가 더욱 가련합니다. 근래에 들으니 김선달이라는 사람이 우리 고을에 머문 지 2년이 되었는데 그간 몰지각한 제 아들 두업을 유인해 밤낮으로 노름했습니다. 간혹 '가괴분전(可怪分錢)'이나 '투전부채(陽牋負債)'라 하면서 제 아들에게 받아 간 노름빚이 100여 냥이나 됩니다.“ 이는 조선 후기 전라도 무장현 이동면 이동에 사는 김응규가 수령에게 제출한 탄원서 내용 가운데 일부입니다. 김응규는 아들 두업이 노름에 빠져 100여 냥이나 되는 돈을 탕진했다고 합니다. 그때 초가집 한 채도 10~20냥이나 되었다고 하니 100냥이면 서민이 평생 만져보기 힘든 거금이었습니다. 정조 때 문신이자 학자인 윤기(尹僧, 1741-1826) 가 쓴 《무명자집(無名子集)》에 나오는 <투전자(投錢者)>라는 시를 보면 투전하다가 아내의 치마를 벗겨가고, 솥까지 팔아먹어서 식구들이 굶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최근 언론에는 ”검찰, 통일교 총재 등 고위층 '5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도박(賭博)놀이를 금지하라고 명하였다. 도대평(都大平) 등 16인에게 각각 장(杖) 80대를 때리고, 또 장용봉(張龍鳳)에게 장(杖) 1백 대를 때리고, 그 스스로 서로 도박하여 얻은 물건은 관(官)에 몰수하였다. 대개 도박놀이는 고려 말년에 성행하였는데, 비록 큰돈이라도 하루아침에 도박하여 얻어서 벼락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경박한 무리가 요행히 따기를 바라고 이 짓을 하다가 처자(妻子)를 빼앗기고 가산(家産)을 탕진(蕩盡)하는 자가 있기에 이르니, 태조(太祖)가 먼저 그 놀이를 금지하였고, 이 때에 이르러 임금이 남은 풍속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듣고, 이에 유사(攸司)에 명하여 체포하고 엄중히 금지하였다.” 이는 《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1414년) 5월 19일 기록입니다. 이때로부터 400년 가까이 된 정조 15년(1791) 9월 19일 《정조실록》 33권 기록에도 투전이 심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정조 때의 학자 성대중(成大中)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보면 투전은 명나라 말기에 역관 장현이 북경에서 들여왔다고 합니다. 또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에도 사람들은 투전 말고도 골패, 바둑,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