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한 것이 4년이 되었습니다. 등산하면서 느끼는 것은 등산로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지 않다는 것과 풀과 나무를 함부로 꺾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 산불로 인해 황폐해진 모습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삼림 파괴 태풍이나 기후 변화로 인한 나무들의 쓰러짐 현상을 봅니다. 특히 얼마 전 일어난 축구장 약 4,600개 크기의 산림을 태운 경상남북도 산불은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마치 산이 앓아누운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산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의 터전입니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인한 기후 변화와 무분별한 자원의 개발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인간의 오만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푸른 산과 맑은 공기,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더 적극적으로 환경 보호에 나서야 합니다. 우린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이 건강해야 우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말은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며, 세상을 받아들이는 손이다. 사람은 말이라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말이라는 손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말이 흐릿하면 세상도 흐릿하게 보인다. 천수관음보살처럼 손이 즈믄(천)이면 세상도 즈믄을 받아들이지만, 사람처럼 손이 둘뿐이면 세상도 둘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치에서 중국말이나 일본말이나 서양말을 얼마든지 끌어다 써야 한다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 토박이말로는 눈과 손이 모자라서 지난날 중국 한자말로 눈과 손을 늘렸다고 여긴다. 그 덕분에 이름씨 낱말이 얼마나 넉넉하게 되었는지는 국어사전을 펼쳐 보면 알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참말이 아니고 옳은말도 아니다. ‘산’은 마치 토박이말처럼 쓰이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끌어다 쓰기 전에는 우리에게 ‘산’을 뜻하는 이름씨 낱말이 없었을까? 이것이 들어와서 비로소 ‘산’을 뜻하는 낱말이 생겨나 우리가 산을 처음 바라보고 세상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사실은 거꾸로다. ‘산’ 하나가 들어와서 이미 있던 토박이 이름씨 낱말 셋을 잡아먹었다. ‘뫼’와 ‘갓’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아래 줄임)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의 선시다. 선시에서 나옹선사는 "산이 말을 한다."라고 했다. 나옹선사가 산과 소통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옹선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소통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산을 향하여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되고, 누구나 가슴을 열고 산을 바라보면 산과 대화가 어느 때고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내가 새벽 예불을 마치고 법당문을 열고 나오면 눈앞에 산이 우뚝 서 있다. 비록 낮은 산이긴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산은 뽀얀 안갯속에서 서서히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낼 때쯤, 나는 두 손 모으고 앞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날 일과의 시작이다. 며칠 전 단비가 내린 뒤 산은 생기를 되찾았다. 온갖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고 지고, 온 산은 연한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색깔로 모습을 변화시켜가고 계절의 아름다움을 부지런히 연출해 내고 있다. 그 가운데 봄 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