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섣달그믐 밤 - 강순예 “오늘밤에 온단다, 신 없는 아이. 고샅마다 집집마다 들어가 이 신발 저 신발 죄다 신어보곤 맞갖은 걸 골라, 하무뭇 해낙낙 홀딱 신고 가버리는…….” 깊은 밤 문 앞에 살며시 내다 놓았다. “작아서 안 신는 신발이야. 맘에 들면 가져가렴.” 사흘 뒤면 섣달그믐날이 된다. 또 다른 말로는 ‘까치설날’인 섣달그믐날에 우리 겨레에겐 많은 세시풍속이 있었다. 특히 섣달그믐은 한 해를 정리하고 설을 준비하는 날이다. 그래서 집안청소와 목욕을 하고 설빔도 준비하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그해의 모든 빚을 청산한다. 곧 빚을 갚고, 또 빚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해 빌린 돈이나 빌려온 연장과 도구들을 꼭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밖에 남은 밥을 모두 먹고, 바느질 등 그해에 하던 일을 이날 끝내야만 했다. 묵은해의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생겨난 풍습이다. 또 재미난 것은 《동국세시기》에 나온 ‘양괭이귀신(야광귀, 夜光鬼) 물리치기’라는 것도 있었다. 섣달그믐 양괭이 귀신은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모두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가운데 줄임)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러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10월 20일 노무현시민센터 지하 2층 공연장에서는 민족작가연합, 한국민족춤협회가 주관하고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10여 개 단체가 함께 주최하는 제3회 통일예술제가 열렸다. 또 이날은 고 김남주 시인의 30주기를 기리고, 시 낭송과 노래, 춤, 통일 발언, 정세 해설을 통하여 통일 의지를 공유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특히 고 김남주 시인의 일대기를 장숙자 명창이 판소리로 녹여냈다. 고 김남주(金南柱, 1946년~1994년) 시인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시민ㆍ사회 운동가다. 유신을 반대하는 언론인 《함성》을 펴냈고 인혁당 사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까치설날 밤엔 - 윤갑수 어릴 적 까치설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지 엄니가 사주신 새 신발을 마루에 올려놓고 누가 가지고 갈까 잠을 설치던 추억 바람에 문풍지 우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어둠 깔린 문밖을 바라보다 밤을 새우던 설날에 아버지는 뒤척이는 날 깨우신다. 큰댁에 차례 지내려 동생 손잡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어갈 때 질기고 질긴 기차표 통고무신이 눈 위에 도장을 꾹꾹 찍어놓고 기찻길을 만든다. 칙칙 폭폭 기차가 네일 위로 뿌연 연기를 내품으며 달려간다. 마음의 고향으로……. 조선시대에 신던 신은 백성이야 짚신이나 마로 삼은 미투리(麻鞋)를 신었지만, 양반들이 신는 신으로는 목이 긴 ‘화(靴)’와 목이 짧은 ‘이(履)’가 있었다. 그런데 화보다 더 많이 신었던 ‘이(履)’에는 가죽으로 만든 갓신으로 태사혜와 흑피혜, 당혜와 운혜가 있다. 태사혜(太史鞋)는 양반 남성들이 평상시에 신었던 것이며, 흑피혜(黑皮鞋, 흑혜)는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나아갈 때 신던 신이다. 또 당혜는 당초(唐草) 무늬가 놓인 것으로 양반집의 부녀자들이 신었고, 온혜(溫鞋)라고도 하는 운혜(雲鞋)는 신 앞뒤에 구름무늬가 놓여진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 날 - 김미숙 읍내 오일장 서는 날 새벽밥 지어 놓고 십 리 길 나선 엄마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용바우재 넘어간다 이리저리 해종일 보내다가 산그림자 길게 내려오면 엄마는 보따리 이고 지고 험준한 고갯길 넘느라 작은 키가 더 작아진다 바다가 없는 산골 마을 저녁 밥상에 노릇노릇 구워 놓은 고등어 한 마리에 여섯 식구 얼굴들이 달빛처럼 환해진다 우리나라에 상설시장이 들어서기 이전 온 나라 곳곳에는 닷새마다 ‘오일장’이라는 장이 열렸다. 인천 강화군에 에 ‘강화풍물시장(매 2, 7일)’이 서고, 경기 화성에 발안만세시장(매 5, 10일), 강원도 정선 ‘정선아리랑시장(매 2, 7일), 전남 순천 ‘웃장(매 5, 10일), 경남 함야 ’함양토종약초시장(매 5, 10일) 등이 현재도 열리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영조 때 펴낸 《동국문헌비고》에서는 1770년대 당시의 전국 장시의 수를 1,064개로 헤아리고 있고, 19세기의 《만기요람》에서는 1,057개로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서 오일장이 운영 중인데 김동리 《역마》의 배경이 된 화개장이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봉평장 등은 소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기 러 기 - 메리 올리버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지난주 우리는 24절기의 열일곱째 ‘한로(寒露)’를 보냈다. ‘한로’는 이름처럼 찬 이슬이 내리는 날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다. 초후에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름새 대신 기러기 등 겨울새가 날아오는 때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혼례에는 신랑이 목기러기를 받아 상 위에 놓고 절을 두 번 하는 ‘전안례(奠雁禮)’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맞아 기러기처럼 백년해로하고 살기를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기러기가 암컷과 수컷이 한번 만나면 평생 다른 것에 눈을 주지 않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따라 죽는다고 믿었기에 전통혼례에 기러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기러기아빠’라는 사람들이 있다. 조기유학 열풍으로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들 꽃 - 김윤자 들꽃의 눈과 귀를 보셨나요 말없이 다문 입술을 보셨나요 가자, 우리 아파트로 가자, 하여도 들녘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아시나요 이 풀잎이 다칠까, 저 풀잎이 다칠까 몸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고 바람과 비에 떨며 하늘하늘 웃고 서 있는 들꽃 작은 눈과 작은 귀로 온 세상을 밝히는 환희 들꽃 앞에 서면 어머니의 향기가 전율로 흐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나태주 시인은 그의 시 <풀꽃>에서 노래한다. 여기서 나태주 시인이 말한 “너”는 바로 들판에 수줍은 듯 키를 낮춰 피어있는 들꽃들을 말함이다. 특히 들꽃 가운데 ‘쥐꼬리망초’ 같은 꽃들은 크기가 겨우 2~3mm밖에 되지 않는 작은 꽃이어서 앙증맞고 귀여울뿐더러 아주 작은 꽃이기에 보는 이가 스스로 키를 낮추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그저 조용히 맞고 있는 들꽃들. 그들은 나만 봐달라고 아우성치지 않는다. 아니 “모르는 척 / 못 본 척 / 스쳐 가는 바람처럼 지나가세요 / 나도 바람이 불어왔다 간 듯이 / 당신의 눈빛을 잊겠어요”라는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