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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너의 자리가 분명히 있다

메리 올리버, <기러기>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10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기  러  기

 

                                        - 메리 올리버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너머로

   그러는 사이에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 높이

   다시 집으로 날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너에게 외친다​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고

 

 

 

 

지난주 우리는 24절기의 열일곱째 ‘한로(寒露)’를 보냈다. ‘한로’는 이름처럼 찬 이슬이 내리는 날이다. 《고려사(高麗史)》에 보면 “한로는 9월의 절기다. 초후에 기러기가 와서 머물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름새 대신 기러기 등 겨울새가 날아오는 때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혼례에는 신랑이 목기러기를 받아 상 위에 놓고 절을 두 번 하는 ‘전안례(奠雁禮)’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맞아 기러기처럼 백년해로하고 살기를 맹세하는 것이다. 우리 겨레는 기러기가 암컷과 수컷이 한번 만나면 평생 다른 것에 눈을 주지 않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이 따라 죽는다고 믿었기에 전통혼례에 기러기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기러기아빠’라는 사람들이 있다. 조기유학 열풍으로 자녀교육을 위해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를 말한다. 평소에는 한국에 머물다가 1년에 1~2번씩 가족이 있는 외국으로 날아간다는 점에서 기러기와 비슷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오래 이런 삶이 오래 지속된 기러기아빠들은 서서히 외로움과 쓸쓸함에 몸부림을 치며, ‘나는 돈 버는 기계인가’라고 생각하게 되고 가정이 해체되는 불운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행한 끝으로 삶을 맺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여기 미국의 메리 올리버 시인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네가 상상하는 대로 자신을 드러내며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기러기아빠에게 외친단다. 시인은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너의 자리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이왕 조기유학을 보냈다면 내가 가장으로서 분명한 구실을 하고 있음을 자각해야만 한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세상은 내 것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고 메리 올리버 시인은 속삭이고 있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