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까치설날 밤엔
- 윤갑수
어릴 적 까치설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지
엄니가 사주신 새 신발을 마루에
올려놓고 누가 가지고 갈까 잠을
설치던 추억
바람에 문풍지 우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어둠 깔린 문밖을
바라보다 밤을 새우던 설날에
아버지는 뒤척이는 날 깨우신다.
큰댁에 차례 지내려 동생 손잡고
소복이 쌓인 눈길을 걸어갈 때
질기고 질긴 기차표 통고무신이
눈 위에 도장을 꾹꾹 찍어놓고
기찻길을 만든다.
칙칙 폭폭 기차가 네일 위로
뿌연 연기를 내품으며 달려간다.
마음의 고향으로…….
조선시대에 신던 신은 백성이야 짚신이나 마로 삼은 미투리(麻鞋)를 신었지만, 양반들이 신는 신으로는 목이 긴 ‘화(靴)’와 목이 짧은 ‘이(履)’가 있었다. 그런데 화보다 더 많이 신었던 ‘이(履)’에는 가죽으로 만든 갓신으로 태사혜와 흑피혜, 당혜와 운혜가 있다. 태사혜(太史鞋)는 양반 남성들이 평상시에 신었던 것이며, 흑피혜(黑皮鞋, 흑혜)는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나아갈 때 신던 신이다. 또 당혜는 당초(唐草) 무늬가 놓인 것으로 양반집의 부녀자들이 신었고, 온혜(溫鞋)라고도 하는 운혜(雲鞋)는 신 앞뒤에 구름무늬가 놓여진 것으로 왕비 등 궁중 여성들이나 상류층 부녀자들이 신었다.
그런데 조선후기 문신 홍석모가 쓴 풍속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아이들의 신과 관련된 재미난 세시풍속 ‘앙괭이귀신(야광귀-夜光鬼) 물리치기’ 얘기가 있다. 섣달그믐 양괭이 귀신은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신어 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가는데 그러면 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신을 감추거나 뒤집어 놓는다. 그런 다음 체(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거르는 데 쓰는 기구)를 벽이나 장대에 걸어놓고 일찍 잔다. 이때 양괭이귀신은 구멍이 많이 뚫린 이상한 물건을 보고 신기해서 구멍을 하나둘 세다가 새벽이 되면 물러간다고 믿었다.
여기 윤갑수 시인은 그의 시 <까치설날 밤엔>에서 어릴 적 까치설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건 양괭이 귀신 때문이 아니라 엄니가 사주신 새 신발을 누가 가지고 갈까 봐 마루에 올려놓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명절 때만 겨우 새신을 신을 수가 있었다. 근데 그 신은 질기고 질긴 기차표 통고무신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아이들은 고무신을 엿과 바꿔 먹고 싶어서 질기디질긴 고무신을 시멘트 바닥에 박박 문질러댔다는 그 기차표 통고무신이다.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시 <까치설날 밤엔>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