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년에 조선에 알려진 <예루살렘>
[우리문화신문=김순흥 교수] 십자군전쟁 이후, 종교개혁과 르네쌍스, 산업혁명을 겪고 서양이 눈을 뜨면서 지리상의 큰 발견과 이에 따른 세계적인 탐험여행은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밀려드는 외세와 열강을 이르는 말)을 초래하였고, 서세동점은 동시에 서학(西學)이 동점하는 계기가 되어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천주교가 전래하였다. 이 땅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7세기 이후다. 중국의 선교사들이 한자로 저술한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17세기 초엽부터 조선에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18세기의 일이다. 천주교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들어왔으나 뿌리내리기까지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개신교는 19세기 말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부터 시작되고, 이후 한국 개신교는 세계의 주목을 끌만큼 놀랍게 성장하여 오늘날 4명 가운데 1명은 개신교 신자일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팽창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가 있다. 성지(聖地) 예루살렘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조선에 알려졌다. 1402년, 조선 건국 10년, 태종 2년, 세종이 5살 때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줄여서 ‘강리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