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어린이날을 맞아 조선 중기 문인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성재일기(惺齋日記)》를 통해 조선시대 자녀 교육과 돌봄의 장면을 소개한다. 《성재일기》에는 네 아들 경(憬)ㆍ업( )ㆍ개(愷)ㆍ각(恪)의 독서와 과거 응시,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는 과정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 아이들의 배움이 집 안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책과 스승, 친족과 지역의 학문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생활 기록이다. 책을 읽고, 과거를 준비하고, 어른에게 배움을 구하다 1576년 1월 15일 기사에는 셋째 아들 금개가 이황(李滉)의 손자 이안도(李安道)에게서 《고문선(古文選)》 전질을 빌려 온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해 8월 15일에는 첫째 금경과 둘째 금업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 서울로 길을 떠났고, 9월 20일에는 돌아왔다. 이듬해인 1577년 1월 12일에는 막내 금각이 처음으로 《논어》 대문을 읽기 시작했으며, 4월 24일에는 둘째 금업이 봉화현에 머물며 조월천(趙月川, 조목)에게 《고문진보(古文眞寶)》 후집(後集)의 내용을 물었다. 책을 빌려 읽고, 과거를 준비하며, 친족 어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 왕실은 아이를 어떻게 길렀을까? 조선 왕실에 태어난 아이는 특별했다. 왕조시대에 임금의 핏줄로 태어난 것부터가 특별한 일이거니와, 특히 왕위를 이어갈 ‘원자’로 태어난 아이는 그 출생의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의 존망이 그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기에, 왕실에서는 자녀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그 정성이 반드시 아이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조기교육’은 그저 뛰어놀고 싶을 나이의 아이들에겐 상당히 가혹한 것이었다. 물론 특별한 자질이 있는 경우에는 공부로 가득 찬 일과를 즐기기도 했지만, 대체로 버거운 일상이었다. 신명호가 쓴 책, 《조선 왕실의 자녀교육법》은 조선 왕실의 태교부터 육아, 청소년 시기의 갈등 해결 방법까지 자녀교육의 모든 면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사람을 낳고 기르는 일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았나 싶어질 정도로 열과 성을 다했던 조선 왕실을 보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p.243)좌의정 채제공: 회의를 시작한 지 이미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원자는 마치 심어 놓은 나무처럼 단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