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남장사 앞에서 본 귀한 벅수(석장승)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벅수와 장승이 있었다. 지금은 많은 이가 이 벅수와 장승을 혼동하고 있지만 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벅수’는 주로 마을이나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는데,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었다. 특히 1600년 무렵 중국에서 발생해 조선으로 마구 밀려오는 돌림병과 잡귀들을 막아내기 위해 전설 속의 치우(蚩尤), 용, 또는 장수나 제왕의 표정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했고 가슴에는 글씨를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승은 역참제도에 의해 생긴 말로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그 역할은 '여기서부터 어디 어디다'라고 하는 표지 기능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일하게 벅수와 장승 전문가인 황준구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여)장군이라는 벅수 문화를 ‘망령된 미신 문화’로 취급하며 깎아내렸고, 역참제도의 폐지로 우리 땅에서 사라지고 없는 장승을 다시 찾아내 벅수와 합치며 ‘장승’이 표준말이라고 왜곡했다. 그리고 1912년 언문철자법에 포함시켜 공표하고 교육시켰다.”라며 벅수와 장승은 분명히 다른 것임을 강조한다. 미국 사람으로서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1941년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