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으로부터 106년(1919)전 3월, 이달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달이다. 특히 일제 군경이 저지른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 인근인 제암리 발안장터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날 곧, 1919년 3월 31일 정오, 발안장터에 몰려든 군중들의 선봉장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결사적인 시가행진을 진두지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해 현장에서 순국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다. 이정근의사는 복부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를 움켜쥐어 일본 헌병의 얼굴에 흩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한독립’을 절규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아! 선열이시여! 어제(3월29일) 낮 11시, 향남읍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장짐리)에 있는 이정근의사창의탑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탄운 이정근 의사를 추모하는 “발안 3·1독립운동의 선구자,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제법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추모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하나의 작은돌은 쓰임이 적지만, 이들이 모이면 거대한 벽이 된다. 한줄기 억새의 흔들림은 연약하지만, 군집의 억새밭은 큰 파도를 만들어 낸다. 한 줌의 물은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지만, 이들이 모이면 넓은 하늘도 담는다" -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설계한 박노욱, 박현정 건축가 글 가운데- 지난달 4월 15일,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새로 문을 연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아래 기념관)엘 며칠 전(5월9일) 다녀왔다. 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제암리 주민 23명과 고주리 독립운동가 일가 6명을 제암리교회당 안으로 집결하게 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총을 쏴 학살한 뒤 교회당을 불태운 악명 높은 학살사건의 현장 근처에 세워졌다. 독립기념관이라고 하면 흔히 육중한 건물이 먼저 떠오르지만,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건물 자체가 지역의 자연과 어우러진 형태로 설계되어 있고 지하에 있어 외관상 위압적이지 않아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장은 지상이 아니라 모두 지하에 설계되어 있었고 입구에서부터 전시장에 이르는 긴 통로는 작은돌들을 모아 벽을 이루게 설계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들이 말한 ‘하나의 작은돌들이 거대한 벽’을 이룬 통로를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