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반온도가 200도, 터널공사에 강제동원 조선인
[우리문화신문=류리수 기자] 지난번에는 조선인들이 혹독한 노동을 한 구로베댐을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조선인들이 일했던 구로베댐 공사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아보겠다.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구로베댐(구로4댐, 1958~1963)은 구로3댐(1936~1940)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로3댐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중국 대륙으로 전선을 확대하게 되면서 군수품 생산을 위한 전력이 시급했기 때문에 추진되었다.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소기 때문에 게야키다이라(欅平)에서 센닝다니(仙人谷)까지 약 6km의 수로터널과 궤도터널을 뚫어야 했다. 그 가운데 아조하라다니(阿曾原谷)에서 센닝다니(仙人谷)까지 742m 구간은 암반 온도 최고 200도가 넘는 고열터널이고, 유황 냄새가 구토를 유발하고, 온천수가 분출해서 화상을 입기 때문에 인간이 들어가기조차 어려운 공간인데, 그런 가장 위험한 곳은 대부분 조선인이 일했다. 구로3댐의 공사는 다른 공사에 견줘 극한의 노동환경이었다. 우선 험준한 산속으로 공사 장비와 자재를 가져가기 위해 벼랑 중턱에 암벽을 60cm 정도 도려내거나 몇 개의 통나무를 벼랑에 이어 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