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밤새 도둑비가 내렸습니다. 길은 젖었고 하늘은 여전히 흐립니다. 어제보다 포근한 날씨지만 바람은 서늘합니다. 오늘 아침, 추위를 살짝 잊게 할 만큼 뜨거운 기별이 들려왔습니다. 정부가 우리 먹거리인 반도체 산업, 그 가운데에서도 설계를 맡은 분야를 키우려고 무려 700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는다는 것입니다. 온누리에서 으뜸가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무지고 올찬 앞생각(계획)을 보니, 우리 앞날이 오늘보다 훨씬 넉넉해 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가멸다’입니다. ‘가멸다’라는 말, 어딘가 낯설면서도 소리 내어 읽으면 입안에 꽉 차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말은 ‘재산이나 살림살이가 넉넉하고 많다’는 뜻을 지닌 그림씨(형용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부유하다’나 ‘잘산다’는 말과 비슷하지만, 토박이말이 가진 구수하고도 수수한 맛이 살아있는 낱말이지요.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이 잘 살기를 바라는 대목에서 힘 있게 쓰였습니다. 김동인 님의 소설 <운현궁>을 보면 흥선대원군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다짐하는 대목에서 이 말이 나옵니다. "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옷깃을 절로 여미게 되는 요즘, 들려오는 기별이 그리 따뜻하지 않아 마음마저 움츠러드는 듯합니다. 요즘 몬값(물가)이 너무 올라 해끝 모임 집에서 조촐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어제도 나눴습니다. 바깥에서 돈을 쓰지 않고 집안에 머문다는 뜻의 영어 ‘코쿠닝(Cocooning)’이라는 말도 여러 해 앞부터 들리더군요. 팍팍한 살림살이 탓이라지만, 저는 이 됨새(상황)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춥고 어수선한 바깥 누리가 아닌, 가장 아늑한 곳에서 서로의 따뜻함(온기)에 기대는 때새(시간)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바로 ‘다붓하다’입니다. 이 말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또는 ‘조용하고 호젓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거리가 가까운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리느낌(분위기)가 호젓하고 아늑할 때 쓰기 참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의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와 ‘붓’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 말의 말밑(어원) 풀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말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모두(다)’와 ‘붙다(붓)’의 느낌이 더해져 ‘빈틈없이 가깝게 모여 있는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온겨울달 12월도 이레를 지나 여드렛날이 되었습니다. 거리는 벌써 들뜬 기운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까운 이들과 만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해끝 모임 날을 잡기 바쁩니다. 요즘 들려오는 기별을 보니, 젊은이들의 해끝 모임 바람빛(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그릇을 돌리던 옛 모습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맛난 먹거리를 나누며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임이 늘고 있답니다. 참 반가운 기별이지요? 그런데 얼굴을 마주 하고 앉아서도 서로의 눈이 아닌, 손바닥만 한 네모난 똑말틀(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몸은 가까이 있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듯한 모습, 어쩐지 쓸쓸하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소통'이나 '유대감' 같은 딱딱한 말 대신, 서로의 마음을 그윽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토박이말 '눈부처'를 나누고 싶습니다. '눈부처'라는 말, 처음 보시거나 듣는 분들이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 말을 말집(사전)에서는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라고 풀이합니다. 낱말의 짜임을 살펴보면 우리 몸을 뜻하는 '눈'과 부처님의 '부처'를 더한 말이지요. 옛 책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람 탓인지 마음마저 움츠러들기 쉬운 요즘, 들려오는 기별은 그리 따뜻하지 못합니다. 치솟는 몬값(물가)탓에 밥집(식당)보다는 집으로 사람을 불러 저마다 먹거리를 조금씩 싸 와서 나누는 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살가운 바람빛(풍경)을 두고 너나없이 ‘포트럭(Potluck) 파티’라고 하더라구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온 낯선 말이 아닌, 우리 삶이 배어 있는 토박이말을 꺼내어 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은 바로 ‘도르리’입니다. ‘도르리’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음식을 차례로 돌려 가며 내어 함께 먹는 일’ 또는 ‘음식을 똑같이 나누어 주거나 골고루 돌려 주는 일’을 뜻합니다. 그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레방아가 돈다 할 때의 ‘돌다’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먹거리를 먹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돌리고 마음을 나눈다는 뜻이 이 낱말 속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잘 쓰였습니다. 벽초 홍명희 님의 소설 <임꺽정>을 보면 옛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던 도르리의 바람빛(풍경)이 생생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입니다. 목도리를 잊고 나오는 바람에 목이 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온나라 배곳(학교)에서는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나누어 준다는 기별이 들습니다. 받아 든 성적표를 보며 웃음을 짓는 이도,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는 이도 있을 겁니다. 나라 안팎이 입시라는 큰 일을 두고 떠들썩한 이때, '눈치 작전'이니 '전략'이니 하는 날 선 말들을 갈음해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어루만져 줄 토박이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은 '다스름'입니다. 이 말은 우리 소리꽃(음악), 국악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바탕 타기(본 연주)에 들어가기에 앞서 소리꽃틀(악기)의 줄을 고르고 타는이(연주자)의 숨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짧은 소리꽃(음악)을 뜻합니다. 낱말의 짜임을 살펴보면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이 말은 '다스리다'라는 움직씨(동사)의 줄기인 '다스리-'에 이름씨(명사)를 만드는 뒷가지(접미사) '-ㅁ'이 붙어서 된 '다스림'이 뀐 것으로 보입니다. 소리꽃틀(악기)의 소리를 '다스리고', 타는이(연주자)의 들뜬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은 어제보다 더 차갑습니다.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즘 거리에 울려 퍼지는 자선냄비 종소리마저 움츠러들었나 봅니다. 들려오는 기별을 보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몬값(물가)과 팍팍한 살림살이 탓에 이웃을 돕는 손길이 여느해만 못하다고 합니다. 나눔의 따스함을 나타내는 탑의 눈금이 더디게 오르고 있다는 기별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시려오는 아침입니다. 이렇게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는 때,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바로 '까치밥*입니다. '까치밥'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참 살갑고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이 말의 짜임은 아주 쉽고도 뚜렷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새인 '까치'와 먹거리인 '밥'을 더해 만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그렇게 가볍지 않습니다. 말집(사전)에서는 이 말을 '까치 따위의 날짐승이 먹으라고 따지 않고 몇 개 남겨 두는 감'이라고 풀이합니다. 늦가을, 사람 먹을 감을 거두어들이면서도 저 높은 가지 끝에 달린 감 몇 알은 날개 달린 짐승들을 생각해 기꺼이 남겨두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넉넉한 마음씨가 깃든 말이지요.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철이 겨울로 가득 차는 온겨울달, 12월 이튿날입니다. 오늘은 나라의 살림살이를 굳히기로 다짐한 날입니다. 들려오는 기별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나라 일을 맡은 국회에서 서로 팽팽하게 맞서며 빈손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걱정뿐입니다. 하지만 거리에는 딸랑거리는 자선냄비 종소리가 울리고, 이름 없는 이웃들이 건네는 따뜻함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겉은 떠들썩하고 시끄럽지만, 속은 조용히 여물어가는 이 겨울 바람빛(풍경)을 보며 떠오른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바로 '알심'입니다. '알심'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열매가 떠오르지 않나요? 말집(사전)에서는 이 말을 크게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합니다. 첫째는 '은근히 남을 안타깝게 여기며 돕는 마음'이고, 둘째는 '보기보다 야무진 힘'입니다. 첫째 뜻의 '알심'은 우리가 흔히 쓰는 '동정'(同情)'이라는 말을 갈음해 쓸 수 있겠습니다. 이 말은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잘 쓰였습니다. 채만식 님의 소설 <소년은 자란다>를 보면 "영호가 오 선생이 더워하는 것을 알고 알심 있게 세숫물을 가져왔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알심'은 상대를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철이, 온이 겨울로 가득차는 온겨울달, 12월의 첫날입니다. 오늘 거리에는 딸랑거리는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랑의 온도를 높이기 비롯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국회에서는 예산안 처리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기별이 들려옵니다. 해끝 바람빛(풍경)이 나눔과 다툼으로 갈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조금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온겨울달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입니다. 이렇게 값진 때에 흐지부지한 끝맺음 대신, 야무지고 단단한 마무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토박이말은 바로 '매조지하다'입니다. '매조지다'라는 말, 소리 내어 읽어보면 참 단단하고 찰진 느낌이 들지 않나요? 이 말은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마무리하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야무진 느낌을 주지요. 이 말의 짜임을 살펴보면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매다+조지다'라고 할 수 있는데 끈이나 매듭을 묶는다는 뜻의 '매다'와 짜임새가 느슨하지 않도록 단단히 맞추어서 박다는 뜻을 가진 '조지다'가 더해진 말이지 싶습니다. 그저 일을 끝내는 게 아니라, 풀리지 않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제가 사는 이곳 진주의 숨씨(공기)도 아침저녁으로 제법 매섭습니다. 어느덧 들겨울(11월)도 끝자락, 스무아흐렛날이네요. 간밤에 기온이 뚝 떨어져 옷깃을 한껏 여미게 되는 오늘, 기별종이(신문)에서 마주한 기별이 바깥바람보다 더 시리게 다가옵니다. 요새 이른바 '고독사'로 누리(세상)를 등지는 분들 가운데 가웃(절반)이 쉰에서 예순 살 언저리의 남성이라는 알림이었습니다. 일자리에서 물러나거나 헤어짐으로 한동아리(사회)와 멀어진 채 홀로 지내는 이들의 아픔을 다룬 글을 읽으며, 문득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외진 곳’을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 이런 곳을 두고 ‘사각지대’나 ‘소외된 곳’ 같은 한자말을 쓰곤 하는데요. 오늘은 이 딱딱한 말을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이자, 찬 바람이 불면 더 시리고 아프게 느껴지는 우리 토박이말, ‘도린곁’ 이야기를 해 드립니다. 이 말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참 쓸쓸하면서도 야릇한 울림이 있지 않나요? ‘도린곁’은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낱말의 짜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맛이 더 깊어집니다. 둥글게 빙 돌려서 베거나 파낸다는 뜻을 가진 우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비가 오지 않아 바싹 메마른 활개마당(운동장)이나 넓은 들판에 세찬 바람이 휘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땅에 얌전이 누워 있던 흙먼지들이 바람의 손에 이끌려 하늘로 무섭게 치솟아 오르는 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마치 땅이 하늘을 향해 내뿜는 거친 입김 같기도 하고, 흙으로 빚은 거대한 구름이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한 바람빛(풍경).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땅의 기운이 하늘로 솟구친 모습, '흙구름'입니다. '흙구름'은 이름 그대로 '흙'이 모여 '구름'처럼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구름이 물방울이나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것과 달리, 이 구름은 땅에서 올라온 아주 작은 흙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지요. 말집(사전)에서는 이 말을 아주 알기 쉽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구름처럼 높이 떠오른 흙먼지의 흐름. 《표준국어대사전》 풀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흙구름'은 그저 바닥에 깔린 먼지가 아니라, '구름처럼 높이' 떠올라야 하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흐름'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만난 '먼지구름'이 뽀얗게 일어나는 흙먼지의 뭉게뭉게 피어나는 '모양'에 마음을 둔 말이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