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개인이 관리하는 송산(松山, 소나무가 많은 산)에서 소나무를 몰래 벌목하는 것은 비록 나라의 봉산(封山)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 뒤로는 각 감영과 각 관아에서 공적으로 쓰는 목재를 비변사(備邊司, 조선 시대의 최고 의결 기구)에 보고하면, 벌목을 허락하는 공문서를 일절 막아서 금지하고, 만일 공적으로 쓸 데가 있으면, 초기(草記, 《승정원일기》 기초자료)를 올리든지 혹은 경연(經筵)의 자리에서 아뢰어 임금이 결재한 다음에 공문서를 발송하게 하라는 뜻으로써 법식을 정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위는 《정조실록》 19권, 정조 9년(1785년) 2월 1일 치 기록으로서 개인이 관리하는 산이라도 소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경복궁 등 조선시대 궁궐은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는데 이는 소나무가 나무결이 곱고 나이테 사이의 폭이 좁으며 강도가 높고, 게다가 잘 뒤틀리지 않는 까닭입니다. 또 벌레가 먹지 않으며, 송진이 있어 습기에도 잘 견뎠기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나무의 속 부분이 누런빛을 띠는 소나무는 그때 가장 중요한 수송 수단이던 배를 만드는 조선재와 죽은 사람의 관을 짜는 데 썼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황장목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데 전 목사 김경항은 목재상과 결탁, 제멋대로 나무를 베도록 허락하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 죄를 논하자면 실로 극히 놀라운데 어찌 도배(徒配, 감옥에서 강제 노동을 하게 한 다음 유배를 보내는 형벌)에 그치겠습니까." 이는 《현종실록》 3권, 현종 1년(1660년) 11월 1일 기록으로 전 목사 김경항이 목재상과 결탁하여 황장목을 베도록 한 것에 대해 사헌부가 아뢴 내용입니다. 또 《세종실록》 3년(1421) 8월 24일 기록에 보면 왜구들이 배를 만들기 위한 소나무를 구하려고 조선 바닷가를 자주 침범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등 궁궐을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음은 물론 소나무는 임금의 관을 짜는 데도 쓰고, 당시에 가장 중요한 수송수단인 배 만들 때도 쓴 귀한 나무였습니다. 특히 나무의 속 부분이 누런빛을 띠는 소나무를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르고 으뜸으로 쳤습니다. 또 나라에서는 '황장금표(黃腸禁標)' 등의 표식을 세워 보호하고 길렀으며, 이를 어긴 사람들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소나무를 귀하게 여긴 까닭은 나무결이 곱고 나이테 사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