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토)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조선통신사를 보러 나온 구경꾼들의 모습에 놀라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301]

[한국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00여 년간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하였다. 도쿠가와 막부의 경사나 쇼군(將軍)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하여,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제2회 방문은 교토의 후시미(伏見), 제12회 방문은 쓰시마(馬)까지였으나, 그 밖에는 모두 에도까지 왕복하였고 제4회 부터 제6회까지는 닛코(日光)에도 방문했다.

조선통신사는 정사(正使)·부사(副使)·종사관(從事館)의 삼사(三使) 이하, 화원(員)·의원(院)·역관(官)·악사(樂士)등 총 400명에서 500명에 이르는 큰 사절단이었다. 이들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하여 일본의 수도인 에도(江戶)까지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약 3,000㎞에 이르는 긴 여정 길에 올랐다. 조선통신사는 정사 외에 곳곳에서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기도 했다.

여기서 1636년의 기록을 보자. 때는 인조 14년 8월 11일. 통신사 일행은 한강을 출발하여 수로와 육로를 거쳐 9월 6일 부산에 도착, 여러 준비를 거쳐 10월 6일 부산을 출발했다. 이후 대마도를 거쳐 10월 27일 후쿠오카에 도착한다. 이어 오사카를 거쳐 교토에 들어간 통신사들의 눈에 비친 일본은 어땠을까?

 

   
▲ 에도성에 들어가는 통신사 행렬도, 30.7×595.0cm, 국립중앙박물관

“큰길 좌우는 다 상점이 있으며 길의 너비는 세간쯤으로 탄 가마가 겨우 바듯하게 지나 갈 수 있었다. 마을은 자그마한 공지도 없이 집들로 가득 찬 것이 동서로 수십 리, 남북으로 15리가 연결되어있는데 호수(戶數)가 6만이나 된다. 지나가는 거리 곳곳에 우글거리는 구경꾼들은 몇 천만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이 모두 줄을 지어 늘어 앉아 있어도 떠드는 소리란 전혀 없으니 얼마나 엄하게 단속하였나 알 수 있다.”

“나라의 풍속이 삶을 가벼이 여기고 죽음을 좋아하므로 한 번 담이 약하다고 이름이 나면 어디를 가나 가는 곳 마다 받아들이지 않으며 찬칼이 날카롭지 않으면 사람 사이에 끼지 못하며 칼과 창 자국이 얼굴에 있으면 용맹한 자로 지목되어 녹을 더 얻고 그 자국이 귀 뒤에 있으면 잘 달아나는 사람으로 지목되어 배척을 받는다.”

“그 풍속이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문자를 알지 못하여 모든 문서는 오직 승려가 맡는다. 이른바 언문(가나문자)이 있는데 그 나라의 홍법대사라는 자가 만든 것이다.”

“풍속이 깨끗하고 간소한 것을 좋아하며, 화려하고 시끄러운 습속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뜰의 꽃나무도 깨끗하고 고요하고 산뜻하게 가꾸기에 힘쓴다. 사람들의 성질은 경박하고 영리하나 또한 참다운 태도가 있다. 쉽게 남을 믿고 언어가 곡진하며 아녀자처럼 성을 내며 호협하며 절개를 숭상한다.”

물론 조선통신사가 만난 일본인의 모습이 100% 정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이나마 400여 년 전 당시의 일본 모습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