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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을 주제로 한 책 《배를 엮다》를 읽고

[맛 있는 일본이야기 310]

[한국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전이 반드시 만능은 아니란 걸 알고도 낙담하기는커녕 애착이 점점 깊어갔다. 가려운 곳에 손이 채 닿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부분마저도 애쓰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절대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전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과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핏 보면 무기질한 단어의 나열이지만 이 막대한 수의 표제어와 뜻풀이와 예문은 모두 누군가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쓴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끈기인가! 얼마나 대단한 말에 대한 집념인가!”

미우라시온은《배를 엮다(船を編む)》라는 책에서 ‘사전 만드는 작업의 어려움’을 그렇게 말했다. 정말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사전> 만드는 작업이야 말로 낱말 하나하나를 날실과 씨실처럼 꿰어야하는 작업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올해 마흔 살의 작가 미우라시온은 와세다출신으로 취직을 위해 20개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을 바탕으로《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이란 소설을 쓰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 미우라시온의《배를 엮다(船を編む)》책 표지

숱한 이력서를 들고 취직을 위해 뛰면서 겪은 이야기야 누가 쓰던 오십보백보의 이야기지만 미우라시온의 《배를 엮다》라는 소설은 그 주제부터 독특하다. 언뜻 제목으로 봐서는 사전 만드는 이야기 같지 않지만 이 책은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다. 완성도 높은 낱말풀이를 위해 자나 깨나 예문 수집에 몰두해야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의해 좋은 사전이 탄생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만약 사전이 없다면 우리는 드넓은 막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지” 작가의 독백이야 말로 ‘사전이 이 땅에 존재하는 까닭’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토록 소중한 사전을 한국에서는 잘 만들고 있나? 자문해본다. 한국에는 국립국어원에서 큰돈을 들여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국립국어연구소에서 국어사전을 만들지 않고 삼성당이나 소학관 같은 출판사에서 국어사전을 만든다. 국가가 관여하지 않아서인지 각 출판사마다 사전의 뜻풀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한 풍토가 《배를 엮다》 같은 소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을 이룬 것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재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을 것 같은 사전을 소재로 한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본 사회다.

 

   
▲ 《배를 엮다(船を編む)》는 2012년 서점대상을 받았다.

삼십 여년이나 된 이야기지만 그때 나는 일본어 전공자로 일본에서 나온 국어(일본어) 전자사전을 구입하여 요긴하게 쓰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국어전공자가 아닌 일반 회사원들도 이  전자사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물론 일본어는 한자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자를 국어처럼 써야하는 일본인들에게 사전은 필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일본인들이 《국어사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미우라시온의 《배를 엮다》라는 소설만 봐도 그를 입증하지 않는가? 《국어사전》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국어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나는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일본의 국어사전을 많이 베끼고 있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글을 써 오고 있지만 아무도 이러한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국어사전을 찾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미우라시온의 말을 빌리자면, ‘말의 바다를 건널 마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국어사전》을 갈고 닦는 사람들, 일본인들의 ‘국어사랑’ 그 끝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