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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어제는 95년 전 청산리대첩으로 일본군 무찌른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14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는 중국땅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몰아낸 이른바 청산리대첩이 있던 날입니다. 화룡현 청산리는 조선인 교민이 많이 모여 사는 북간도의 연길과 용정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사방을 에워싸듯 둘러싼 주변은 산세가 험하고 뒤편으로는 울창한 숲지대가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지금도 두메산골에 속하는 곳입니다. 당시 청산리 계곡 안에는 약 200여 호 정도의 조선인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주변 산악은 험준한 지형으로 독립군이 운집하고, 활동, 은신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지요.

지금으로부터 95년 전인 1920년 10월 21일 이곳 청산리 일대에서는 조선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22일 오전,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북로독군부 연합부대 2,000여 명과 일본군 동지대의 어랑촌 결전이 시작되었는데 오전 9시 300여명의 김좌진 부대와 아즈마 부대의 일부인 기병대대 사이에 시작된 전투는 그날 저녁 7시 무렵까지 지속되었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독립군들은 촌락의 아낙네들이 입에 넣어주는 주먹밥을 먹으며 싸웠으며 독립군은 청산리 지역의 지형을 잘 이용해 기습 작전, 매복 작전 등으로 승리를 거둡니다.  

 

   
▲ 청산리전투, 여성들이 만든 주먹밥을 먹고 싸워 승리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중국의 장완린 작가는 청산리 전투를 두고 “중국은 청일 전쟁 당시 일본에 패했다. 이로서 일본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청산리 전투의 승리로 중국 사람들도 항일 정신을 갖게 되었다. 청산리 전투의 승리는 중국인들이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바꿔놓았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청산리 전투에 진 일제는 독립군의 근거지인 간도 일대의 조선인 마을을 초토화시켜 수많은 조선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지만 청산리전투에서 보여준 독립군의 기개는 이후 우리 겨레의 독립운동사에 큰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는 데에 이견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