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영의정까지 지낸 이탁(李鐸)이란 청백리가 있었습니다. 그 이탁이 이조판서를 할 때 그 휘하에는 인사 행정을 맡은 실무책임자(낭관)로 깐깐하기로 소문난 정철(鄭澈, 1536∼1593)이 일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철은 이탁이 시행하려는 인사 문제에 번번이 어깃장을 놓기 일쑤였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그 사람을 이 벼슬에 앉히는 것은 백성의 기대에 맞지 않습니다.”, “아니야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네.”
이렇게 말했는데도 정철이 꾸며 올린 서류에는 이탁이 뜻하는 사람은 빠져 있곤 했지요. 하지만 이때 이탁은 노발대발하기보다는 “어허 그 사람 참 고집도 어지간하구먼.” 하면서 아랫사람인 정철의 뜻을 따르곤 했다고 합니다. 이탁은 이렇게 공평한 인사 행정으로 이름난 명관이었는데 대신 그의 집안 살림은 언제나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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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사람 정철의 인사문제 반대에도 번번이 수용한 이조판소 이탁(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
조선 중기의 문신 심수경(沈守慶)이 쓴 이탁의 비문에 “공은 재물을 가볍게 여겨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고아를 어루만져 주고 과부를 구휼하고 혼인할 돈을 도와주며, 상 당할 때 부조하기를 전심으로 하니, 친척과 벗과 이웃이 모두 좋아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손님이 찾아오면 술상을 차려 내올 수가 없어서 술병에 술 대신 간장을 탄 냉수가 담겨 나오는 일도 허다했다고 하는 말도 전합니다. 요즘 어디 이탁 같은 공직자는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