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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선 교수의 행복 메시지

집념, 호랑이라고 생각해 쏜 화살이 바위를 꿰뚫다

[최운선 교수의 행복메시지 9]

[우리문화신문=최운선 교수] 집념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 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모범을 보인다. 집념은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로 ‘집착(執着)’이라는 말이 있디. 이 말은 집념과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집념이 긍정적인 측면의 몰입을 말한다면, 집착은 부정적인 측면의 몰입을 의미한다. 그 예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진 사람이나, 훌륭한 예술을 창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에 견주어 집착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떡만 바라본다거나,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에 불필요하게 집요한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집착이 강하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그냥 할 때보다는 집중을 다하여 온힘을 쏟으면 그 능률은 분명 배다 된다. 특히 우리가 온 힘을 모아 집중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바꿀 수도 있다.

한나라 때의 명장 이광은 어릴 적부터 힘이 장사였다. 그는 천성이 쾌활하여 동네 아이들을 거느리고 산야를 달리며 사냥하기를 즐겼다. 그는 대단한 명궁으로, 그가 화살을 쏘면 어김없이 짐승들을 쓰러뜨렸다. 어느 날 그는 산속에서 홀로 사냥을 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밤이 어두워지도록 그는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급히 화살을 집어 들었다. 그는 호랑이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해 온몸의 신경을 곧추세우고 호랑이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런데 호랑이는 화살에 맞았는데도 움직이질 않았다.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에 이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호랑이의 형상을 한 바위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쏜 화살은 바위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바위를 향해 화살을 날려보았다. 그러나 그 화살촉은 돌에 튕겨나가고 화살대도 부러지고 말았다. 이광은 집에 돌아와 양자운 이라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양자운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쇠붙이나 돌덩이라도 뚫을 수 있는 법일세.”

그렇다! 상대가 호랑이라고 생각했을 때 날린 화살과 호랑이를 닮은 바위라고 생각했을 때 날린 화살의 모양은 같지만, 그 날린 사람의 집념에 따라 그 차이는 엄청나게 달랐다.

이러한 집념에 대한 인물로는 목숨 걸고 바둑을 둔다는 집념의 승부사 조치훈, 그리고 무서운 실행력과 도전 정신으로 현대를 세계 굴지의 회사로 만든 정주영 회장, 실패하면 포항 영일만에 목숨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험난한 역경을 극복하고 굴지의 철강회사를 세운 우리나라 철강업계 대부, 박태준 회장. 특히 역사에 길이 남을 집념이 강한 위인으로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그리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집념은 가장 숭고한 업적을 이룬 집념의 승부사였다. 이토록 한 사람의 집념은 후손들에게까지 지속 성장 가능한 토대를 굳건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지옥변》이라는 소설속의 주인공인 화가 ‘요시히데’라는 인물은 어떻게 평가를 내려야 할까? 소설 속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그림의 완성도를 위해 가마 속에서 불타는 딸을 그린 화공, 집착이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화공인 ‘요시히데’는 영주로부터 지옥도 제작을 의뢰 받는다. 화공은 온몸으로 느끼지 않고는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항아리 안에 매를 숨겨놓고 자기 방으로 제자를 불렀다. 그리고 제자를 쇠사슬로 묶고는 매를 풀어 덤비게 한다. 이때 무섭게 덤벼드는 매를 보고 경악하는 제자의 공포감에 휩싸인 눈동자를 보고야 흰 종이 위에 그림 한 장면이 그려졌다.

그런데 그림의 마지막 장면은 지옥 불에서 신음하는 왕비의 모습이었다. 그는 처절하게 죽어 가는 여인의 모습을 보아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시히데(화공)는 그림(지옥도)을 완성하기 위해 영주에게 한 젊은 여자가 탄 휘장 덮은 가마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영주는 그 부탁을 들어 주었다.

그런데 화공은 영주에게 또다시 부탁을 한다. ‘그 가마에 불을 질러 달라고…….’ 영주가 가마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다. 화염이 솟아오르면서 불에 타 일그러지는 여인의 처절하고 공포감에 휩싸인 모습은 바로 화공의 딸인 것이었다. 화공은 불에 타 죽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작품을 완성하고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 정말 치열하고 처절한 화공의 모습이다.

이러한 화공의 행동은 과연 집념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이는 분명 집착이다. 심리학자 쉘던 코프(Sheldon Kopp)의 말이 생각난다. ‘집녑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쟁은 자기 자신 속에서 이뤄진다’고. 그렇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하게 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집념이란 잡념을 물리치고 온전히 단 하나의 생각에 몰입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것이다. 따라서 집념으로 향하는 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이겨내는 것이다.

그러나 화공은 집념이 아닌 집착이 되었다. 그 이유는 훌륭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집념을 이루기 위해 처음에는 집념으로 출발했으나 욕심이라는 집착이 생겨 자신의 딸과 제자를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예술지상주의 또는 악마주의라 일컫는 예술인들의 행동은 집념이 아닌 모두 집착인 것이다. 이제 ‘나의 욕구(欲求)는 모두 미(美)다. 선(善)도 미(美)인 동시에 악(惡)도 또한 선(善)이다’라는 말은 배척되어야 한다.

요즈음의 정치를 위한 정치가 너무나 난무하고 있다. 이는 정치지상주의에 해당된다. 바로 집착인 것이다. 정치지상주의는 권력지상주의로 까지 변질될 수 있다. 그 예가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가치관의 전도에서 나타난다. 지난 대선 때 사회복지라는 이슈는 볼셰비키 혁명 때, 북한정권 수립 때 대중동원을 위한 밑밥과 같다. 선거 때마다 복지라는 미끼로 대중을 향한 선전과 선동은 분명 바른 정치가 아니다. 정치지상주의나 권력지상주의에서 나타난 집착의 파생물일 뿐이다.

이 글의 머리에서 필자가 집념과 집착을 구분하는 이유는 집착을 집념으로 잘못알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예비후보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우를 범한다면, 부질없고 가치 없는 것을 추구하여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더 큰 우를 범하는 국회의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