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최운선 교수] 우리나라 일부 청소년들은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평생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이 이 말을 들으면 매우 섭섭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청소년들은 오히려 부모들이 존경받을 만한 일을 했느냐고 반문한다. 이 말에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이처럼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부모가 지녀야 할 이성적 권위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존경심이라는 것은 맹목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지혜를 일깨워 준 데 대한 고마움에서부터 우러나온다. 따라서 우리의 부모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까닭은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데 힘쓰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는 이성적 권위를 부모들이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성적 권위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영혼 속에 부여되어 있지는 않다. 그 능력은 단지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지점에 이상적인 목표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자녀를 위한 이성적 권위에 대한 인식을 부모들은 새롭게 해야 한다. 따라서 자녀를 위한 이성적 권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모로서 자신의 인생 자체에 걸려 있는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우리문화신문=최운선 교수]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1821-1881)가 쓴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생각해 낸 사상에 따라 인간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세상의 모든 법률과 제도, 또는 도덕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세상의 규범을 간혹 무시하고 스스로 정치가라고 나서 행동하는 영웅심리의 초인들이다. 그런데 영웅심리의 초인사상을 품고 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전당포 노파를 없애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영웅심리의 초인 사상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는 노파를 살해하고 난 후, 자신이 과연 초인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을 갖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 초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깨닫게 된 계기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소냐에 의해 인간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고서 부터이다. 희망을 갖게 된 까닭은 어떻게 소냐와 같은 연약한 소녀가 창녀가 되
[우리문화신문=최운선 교수] 집념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 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모범을 보인다. 집념은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한 가지 일에 매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로 집착(執着)이라는 말이 있디. 이 말은 집념과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집념이 긍정적인 측면의 몰입을 말한다면, 집착은 부정적인 측면의 몰입을 의미한다. 그 예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진 사람이나, 훌륭한 예술을 창작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에 견주어 집착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떡만 바라본다거나,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에 불필요하게 집요한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집착이 강하다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그냥 할 때보다는 집중을 다하여 온힘을 쏟으면 그 능률은 분명 배다 된다. 특히 우리가 온 힘을 모아 집중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바꿀 수도 있다. 한나라 때의 명장 이광은 어릴 적부터 힘이 장사였다. 그는 천성이 쾌활하여 동네 아이들을 거느리고 산야를 달리며 사냥하기를 즐겼다. 그는 대단한 명궁으로, 그가 화살을 쏘면 어김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