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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시대 대표적인 염색품 천수국수장

[맛 있는 일본이야기 35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라시대(710-794)의 염직공예품으로 유명한 것 가운데 하나가 “천수국수장(天壽國繡帳)”이다. 국보로 지정된 천수국수장은 일본의 성덕태자가 622년에 죽은 뒤 명복을 빌기 위해 그의 비(妃)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염원하여 만든 것으로 성덕태자가 천수국(天壽國)에 있는 모습을 수장(繡帳, 수를 놓은 휘장)에 새긴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천수국수장의 밑그림을 그린 이들이 거의 고구려계 화가들이었다는 점이다. 7세기 무렵 고구려 출신 화가들은 일본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게 되는데 이는 본국의 세련된 불교미술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승려이면서 법륭사 금당벽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승려 담징 못지않은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가서일(加西溢)이다. 가서일은 성덕태자가 사망하자 극락왕생을 위한 천수국수장 제작 시에 밑그림을 그리는 화가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사실은 천수국수장 명문(銘文)에 이름이 남아 있어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는데 당시 밑그림 작업에 참여한 화가들은 동한말현(東漢末賢), 고려가서일(高麗加西溢), 차한노가이기(叉漢奴加己利), 영자략부태구마(令者掠部秦久麻)와 같은 인물들인데 이 가운데 “고려가서일"은 고구려의 가서일이란 뜻이다.



나라시대 최고 권력자인 성덕태자가 죽은 뒤 그를 위한 추모작품인 천수국수장에 고구려 출신 화가들이 대거 관여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 회화에 고구려의 영향이 컸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다.

천수국수장을 그린 때는 성덕태자 사망(622)과 대화개신(645) 사이로 보고 있으며 이것은 고구려식 벽화가 그려진 다카마츠고분(高松塚古墳)이 축조된 시기(694~710) 이후까지도 이러한 고구려식 화풍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천수국수장은 단편적인 것만이 현존하지만 아스카 시대의 염직공예, 회화, 복장, 불교신앙 등을 이해 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