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밥사발"이라는 말은 요즘은 잘 쓰지 않고 ‘밥공기’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흔히 쓰던 말입니다. “저녁을 물리자 주모는 텁텁한 밑술을 두 사발이나 떠 들여 넣어 주었다 - 《문순태, 타오르는 강》, 팔기는 손수 쑨, 제법 쌀알이 보기 좋게 깔린 감자 죽사발을 아내의 머리맡에 들여놓는다. - 《김춘복, 쌈짓골》”에서처럼 술을 담으면 술 사발이요, 죽을 담으면 죽사발로 썼지만 이제 일상에서 사발은 보기 어렵습니다.
▲ 풍신수길이 가져간 것으로 천하으뜸 찻잔이라는 막사발
사발(沙鉢)은 무늬가 없는 백자(白磁) 사발이 많았는데 백자란 고령토로 그릇을 만든 뒤 투명한 잿물을 씌워서 1300℃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순백의 투명한 자기를 일컫습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보면 "세종 때 어기(御器, 임금이 쓰는 그릇)는 백자를 전용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으나 일반인들도 백자 사발을 즐겨 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조 때는 백자 사용을 금지하게 되지요. 그 뒤 광해군 8년(1616)부터 일반 사대부에 한정하여 백자 사용이 허용됩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조선백자에 대한 요구는 대단히 높아서 암암리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으며, 18ㆍ19세기를 지나는 동안 더욱 고급화되면서 생산량도 증가하여 전국으로 확대됩니다. 사발에 관한 속담으로는 이미 자기 차지임에도 못 챙긴다는 뜻으로 “사발 안의 고기도 놔 주겠다”, 는 말이 있는가 하면, 한 가지 일에 재미를 붙이다가 다른 일에 손해를 본다는 뜻으로 “흰 죽 먹다 사발 깬다.”라는 속담 따위가 있듯이 사발은 예전 우리의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될 그릇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