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스리랑카 캔디 이윤옥 기자] “스리랑카인들은 부처님의 소중한 치아사리를 인도로부터 목숨을 걸고 이곳 불치사로 가져왔습니다. 스리랑카인에게 치아사리는 곧 부처님을 뜻하는 것으로 스리랑카는 16세기부터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으로부터 각각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승려 한명 남지 않는 대법난을 겪게 됩니다만 이 치아사리만큼은 목숨처럼 지켜왔습니다. 말하자면 이곳에 모신 치아사리는 스리랑카 불교 그 자체요,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부처님의 법등(法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와치싸라 스님은 유창한 한국말로 스리랑카 불교 역사를 기자에게 설명해주었다. 스님은 콜롬보에서 165킬로미터 떨어진 캔디지역에 자리한 불치사(佛齒寺, Sri Dalada Maligawa)로 이동하는 3시간 여 동안 스리랑카 불교 역사에 대해 소상한 설명을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 불치사에 도착해서도 스리랑카의 불교 강의(?)는 이어졌다.
와치싸라 스님으로부터 수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기자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식민시대의 불교 말살” 이야기였다. 동병상린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르는 것이리라. 떠올리기도 싫은 일제의 침략역사를 겪은 우리에게 스리랑카의 외세 침략의 역사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스리랑카는 외세의 침략으로 불교가 말살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유교를 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의 불교 대탄압과 이후 서양 종교인 기독교의 유입으로 또 다시 그 존재감이 약해져가는 모양새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스리랑카 역시 500년에 이르는 서양의 침략과 1948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내전에 의한 불교 유적지 파괴 등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불교유적의 보존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벽화들을 보십시오. 이 벽화들은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고국인 인도에서 흰두교도들에게 파괴당하게 되면서부터 치아불사리를 스리랑카로 옮겨 오는 험난한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지요. 기원전 3세기 일입니다. 어렵사리 치아사리가 스리랑카로 옮겨져 왔지만 외세의 침략시기에 훼손을 우려해 수십 차례 동굴 등으로 옮겨가며 보존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지요. 그러하기에 지금 남아 있는 치아사리는 스리랑카인들의 불심(佛心)의 중심이자 영원한 법등(法燈)이라고 봅니다.”
불치사가 자리한 캔디는 스리랑카의 마지막 왕조인 싱할라왕조의 서울이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왕조의 멸망은 마치 일제에 의해 조선왕조가 종말을 고하고 경복궁이 파괴되는 수모를 겪는 것과 별반 다름없었다. 외세에 의해 왕조의 몰락이 이어졌고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싱할라 왕궁 터에 불치사가 자리하게 되었으니 이 절이야말로 스리랑카인들에게 왕조시대를 연상케 하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치사의 유래에 관한 와치싸라 스님의 한마디, 한마디 속에는 그간 스리랑카 불교 역사의 굴곡 깊은 고난의 여정이 그대로 묻어나있었다. 국교가 불교이고 전 국민의 70퍼센트가 불교신자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스리랑카의 불교가 어떻게 유지, 보존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와치싸라 스님은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쳤다.
한때 불교국가였던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이슬람국가로, 네팔은 흰두교로 돌아섰는가 하면 미얀마의 불교유적지인 바미안 석불이 파괴 되는 등 불교의 미래가 그리 밝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누고 치아사리가 모셔져있는 불치사 경내를 돌아보았다. 불행히도 치아사리 친견 시간과 맞지 않아 직접 친견은 하지 못했다. 친견이라고는 하지만 치아사리를 직접 보여주는 것은 아니며 사리함만 개방하는 것이지만 그 마저 기자가 방문한 시간과 맞지 않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와치싸라 스님의 친절한 안내로 불치사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스리랑카가 걸어온 불교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불치사 경내에 국제불교회관 (INTERNATIONAL MUSEUM OF WORLD BUDDHISM)이 있는데 그 안에 “한국관”의 전시물이 일부 날림인데다가 불상 도금이 벗겨지는 등 하루속히 손을 봐야할 것 같았다. 안내를 맡은 와치싸라 스님은 국제불교회관 전시 담당자로부터 “한국관의 부실한 전시품을 하루 속히 손을 보았으면 좋겠다. 2017년 5월에 있을 세계불교대회 때 외국에서 많은 분들이 방문예정인데 한국관이 그대로 방치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 2011년 개관 당시에 도움을 준 한국의 조계사 등에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보수 수리에 대한 확답을 제대로 못 들었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했다.
국제불교회관에는 한국을 포함한 일본, 중국,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등 18개관이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불교국가 태국관 등은 수시로 전시물을 교체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주기적으로 일부 전시물을 교체하는 등의 노력은 하지 못한다하더라도 전시된 불상이 흉물스럽게 도금이 벗겨지는 따위의 일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제불교회관 담당자는 2011년 한국관 개설시에 도움을 주었던 기관의 명함을 기자에게 십여 장 보여주었다. 그 명함에 있는 연락처로 “한국관” 보수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연락 두절 또는 “보수까지는 관여하기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스리랑카 불치사 국제불교회관 ‘한국관의 전시물 보수’에 관심을 갖는 기관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이 전시관은 민간보다는 문화체육부가 나설 일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현재 국정농단 사건으로 초토화된 문체부에 여력이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국제불교행사가 열리는 5월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우리의 마음은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