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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여의사는 누구일까?

[맛 있는 일본 이야기 390]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기노 긴코(萩野吟子, 1851-1913)는 일본의 의사 국가자격 시험에 합격한 최초의 여의사다오기노 긴코가 여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임질(淋疾)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임질은 임균이 일으키는 성병. 주로 성교로 옮아 요도 점막에 침입하며, 오줌을 눌 때 요도가 몹시 가렵거나 따끔거리고 고름이 심하게 난다. 여자는 동시에 방광염을 일으키며 내부 생식 기관에 염증을 일으키고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오기노 긴코는 16살에 부잣집인 명주(名主, 묘슈)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지만 결혼 뒤 얼마 안 되어서 심한 임질에 걸려 이혼에 이른다. 지금 같으면 임질로 이혼을 할까 싶지만 당시는 부잣집 며느리로서 아마도 임신과 출산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어 이혼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기노 긴코는 이혼 뒤 도쿄로 나와 순천당의원에 입원하여 부인과 치료를 받게 되는데 당시 의사는 모두 남자뿐이었다.


 

임질 치료를 위해 하반신을 남자의사에게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라 오기노 긴코는 여자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치료해주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여의사의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일단 여의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없어 도쿄여자사범학교(지금의 오챠노미즈대학)20살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익힌 뒤 이 대학 교수의 소개로 군의관인 이시구로 타다노리(石黒忠悳, 1845-1941)에게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설득하여 당시 남자 의학기관인 코쥬인(好寿院)에 특별히 입학 허가를 받는다.

 

하지만 남학생들로부터 심한 왕따를 당하는 등 여의사로서의 과정은 험난하였다. 그럴수록 오기노 긴코는 실력으로 남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리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수석의 영예로 졸업하게 되지만 기다리는 것은 차디찬 사회의 냉대였다. 개업의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의술개업시험(医術開業試験) 자격조차 여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던 때였으므로 오기노 긴코는 5년이나 기다린 끝에 1884, 드디어 의술개업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었다. 물론 합격이었다.



 오기노 긴코의 나이 34살로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무려 15년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일본 여의사 1호의 자격을 얻은 오기노 긴코는 이듬해인 1885년 도쿄 유시마(湯島)에 산부인과오기노의원(産婦人科荻野医院)을 개업하였다. 병원문을 열자마자 신문과 잡지 등에서 여의사1호를 취재하기에 몰려들었다. 그 덕에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오기노 긴코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자기 자신이 심한 임질을 앓은 경험을 살려 일본의 공창(公娼) 폐지운동을 벌이는 등 사회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39살의 나이에 13살 연하의 기독교 세례를 받은 청년 시카타유키요시(志方之善)와 결혼하여 62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까지 홋카이도 등을 오가며 의술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