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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향기에서 느끼는 일본인의 계절감각

[맛 있는 일본 이야기 39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 유년시절엔 국화라고 하면 가을이었고, ‘토마토라고 하면 여름이 제격이라고 여겼습니다만, 요즈음은 비닐하우스가 잔뜩 생겨 꽃이든 야채든 과일이든 연중 어느 때라도 재배되고 있습니다. 또한, 도로를 만들고 건설을 하느라 강이나 논을 메우고 산림을 훼손하고 나니 새들의 소리도 멀어지고 나무의 녹음도 볼 수 없어 그때그때의 정취도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홋카이도 출신 작가 이시모리 노부오(石森延男, 1897~1987) 씨는 <일본인의 계절감>이란 수필에서 이렇게 썼다. 그의 집 울타리는 낙엽송으로 되어있었는데 키가 4미터나 되는 거대한 낙엽송이 20미터나 길게 늘어서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눈이 사라지고 봄이 찾아오면 낙엽송 산울타리도 동그랗고 자그마한 순을 틔웁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순에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무심코 낙엽송의 순을 따서 냄새를 맡으면 강렬한 냄새가 퍼져 콧속을 간질거립니다. 나는 봄을 확인하기 위해 순 몇 개를 따서 손바닥에 비벼보곤 했는데 이렇게 낙엽송의 순 냄새를 맡는 것은 나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아버지와 들녘을 산책하게 되는데 그때 아버지가 한포기 풀을 뜯어 자신에게 보이면서 풀이름을 물었다고 했다. “이었다. 이시모리 노부오가 아직 일본의 고전을 접하기 전인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그 쑥에 관한 고전 작품의 구절 하나를 들려주었다고 회상한다.

 

먼 옛날이지. 천 년 전에 세이쇼나곤(清少納言, 일본 헤이안시대의 여성 작가)이 쓴 <마쿠라노소시(枕草子)>에 이런 구절이 있단다. ‘우마차를 타고 산골 마을을 지나자니 바퀴에 이겨진 쑥 향기가 감돌았다.’ 라는 글귀 말이야.”



이 이야기를 듣고 훗날 일본의 고전을 읽으면서 작가 이시모리 노부오는 자기가 낙엽송의 순을 따서 냄새를 맡은 것이 결코 생소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천 년 전 바퀴에 쑥이 으깨어져 풍기는 냄새를 맡을 줄 알던 고대 일본인과 자신이 무관하지 않음을 느낀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일본인의 마음에 계절감이라는 것이 흐르지 않았다면, 일본 문학은 싱거웠을 것이라고 말이다. 특히 단카(短歌, 일본의 전통적 시가)나 하이쿠(俳句, 5,7,5조의 형식으로 구성된 일본의 정형시) 등은 계절감과 밀접한 것이므로 더욱더 일본인의 계절감각이 특이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낙엽송 울타리에서 봄이 움트는 모습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순을 손으로 비벼 냄새를 맡아보던 소년은 어느새 커서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어린이들에게 감수성을 심어주는 아동문학가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갈 것이 있다. 이시모리 노부오의 이력이다. 그는 일제국주의 시절 13년간 만주에서 지내면서 만주아동문학운동(満洲児童文学運動)의 지도자로 활약한 바 있다. 만주 체류 시에 재만일본인(在満日本人)의 이야기를 훈훈하게 그린 작품들이 있으나 그 시각은 어디까지나 만주진출의 배경이 빠진 일본인의 입장에서 그린 것이라는 비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