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민족’을 찾아보면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이라고 해 놓았다. 온통 한자말투성이어서 여느 사람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것을 그대로 토박이말로 뒤쳐 보면, ‘한곳에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 같은 말과 삶으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된다. 얼마나 쉽고 또렷한가!
국어사전이 ‘겨레’를 ‘민족’이라 하니까 사람들이 우리말 ‘겨레’는 버리고 남의 말 ‘민족’만 쓰면서, 남녘 한국에서는 ‘한민족’이라 하고 북녘 조선에서는 ‘조선민족’이라 한다. 같은 겨레이면서 저마다 다른 반쪽을 도려내 버리고 남은 반쪽인 저만을 끌어안는 이름을 만들어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이나 북이나 틈만 있으면 “통일, 통일” 하는 소리를 반세기 넘도록 줄기차게 되풀이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두 쪽이 갈라져 살지만, ‘같은 핏줄을 이어받아 한곳에 오래도록 함께 살면서 같은 말과 삶으로 하나의 동아리’를 이루었기에 다시 하나로 어우러져 살기를 참으로 바란다면, 먼저 ‘민족’이라는 말부터 버리고 ‘겨레’라는 우리말을 되살려 써야 하지 않겠는가.
‘배달겨레’라는 말이 요즘은 거의 꼬리를 감춘 듯하지만, 일제 침략 시절까지만 해도 자주 쓰던 낱말이다. 그러나 광복 뒤로 남북이 갈라진 다음, 친일 세력이 남쪽 한국을 다스리면서 제 나라만 챙기고[국수주의] 제 겨레만 내세우는[민족주의] 낱말이라고 몰아붙여서 너도나도 쓰기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온 세상 모든 사람과 더불어 어우러져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 왔으니 이런 낱말도 새삼 쓸모가 생겨난 듯하다. 온 세상 사람들과 손잡고 더불어 살아가자면 먼저 갈라진 제 겨레부터 하나로 싸안는 것이 차례일 터이기 때문이다.
‘배달’은 본디 ‘박달(킢달)’이고, 뜻은 ‘밝은 땅’이다.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일으킨 ‘태백산’, 곧 ‘한킢달’에서 말미암은 말이다. 태백산을 18세기부터 학자들은 ‘백두산 또는 장백산’이라 했는데, 요즘에는 요하 상류의 ‘홍산’이나 중앙아시아의 ‘천산’이 모두 태백산과 같은 이름이라고 보기도 한다. ‘태백산, 장백산, 백두산’은 모두 ‘백산(白山)’을 강조한 이름인데, 한자말 ‘백산’의 본디 우리말이 다름 아닌 ‘킢달’이다. ‘천산’도 곧 ‘백산’의 다른 이름이며, ‘홍산’도 ‘붉은 산’이기에 우리말로 ‘킢달’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뿐 아니라 환웅이 하늘에서 타고 내려온 나무인 ‘신단수(神檀樹)’의 ‘단(檀)’과, 환웅을 이어받아 왕검조선을 세운 ‘단군(檀君)’의 ‘단(檀)’이 또한 우리말 ‘킢달’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오늘날 옥편에서도 ‘檀(단)’의 새김을 ‘박달나무’라 한다.
그러니까 ‘배달’은 환웅이 처음 하늘에서 내려와 우리 겨레가 신시조선이라는 동아리를 이루어 살기 비롯한 땅의 이름이며, 신시조선을 이어받아 왕검조선이라는 동아리를 이루어 다스린 단군왕검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배달겨레’는 신시조선과 왕검조선의 땅에서 환웅에게 핏줄을 받아 함께 어우러져 오늘까지 살아오는 자랑스러운 우리 겨레를 뜻하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