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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인가 물총새인가, 그대는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8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오늘날의 인간 군상을 1898년 12월 24일 <제국신문>에 열거된 족속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정말 그러한지, 126년 전 “한탄스러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음미해 보자.

 

“일전에 친구끼리 서로 수작하는 말씀을 들은즉 몹시 이상하기로 여기 옮기노라.

 

한 사람이 가로되, 우리나라 사람은 평생에 견문이 고루하여 새로운 일을 아무것도 못 하나니, 옛글에 이른바 우물 밑에 개구리라. 항상 말하기를, 하늘이 적다면서 제 본 것만 올타하더라. 다른 한 사람이 가로되, 우리나라 사람은 새와 같아 눈은 반들반들하고 말은 재작재작 지꺼리기는 잘도 하고 떼를 지어서 모이기도 잘 하나 실상은 꾀도 없고 겁도 많아 아무 일도 못하나니,

 

옛글에 일렀으되, 연작(燕雀:제비와 참새)이 처마에서 구구구구 서로 즐겨할 새 부엌 고래에서 불꽃이 올라 집이 장차 탈건마는 연작은 화가 몸에 미칠 줄 모르고 낯빛을 변하지 아니한다 하더라.

 

…누구는 꼭 여우 같아. 옛말에 이르기를, 여우가 범을 보고 죽을까 무서워하여 간사한 말로 범을 속이되 나는 짐승 중에 왕이라 일백 짐승이 나를 보면 두려워 피하나니 그대가 나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약 내 말을 못 믿겠거든 함께 가자 하니 범이 그 말을 의심하여 함께 나서니 산중에 모든 짐승이 과연 겁을 내어 도망하거늘 범이 제 몸을 겁내는 줄 모르고 여우 꾀에 속더라. 지금 참으로 호랑이 위엄을 빙자하는 여우가 많다더라.

 

한 사람이 이르기를, 지금 세상에는 딱다구리가 많더라. 옛말에 이르기를, 탁목조(啄木鳥, 딱다구리)가 고목에 집을 짓고 날로 고목을 쪼더라. 그 고목이 넘어지지 아니 하여야 제 집도 온전하련마는 탁목조는 그런 이치를 모르고 썩어가는 고목나무를 날마다 쪼기만 하니

실로 애석한 일이라 하더라.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지금 사람들은 비명횡사하는 파리가 많다더라. 파리라 하는 것은 무슨 음식이든지 물건이든지 냄새만 나면 곧 먹고자 하여 모이나니 무슨 일이든지 제 몸에 이(利)가 될 듯하면 쩝쩝대며 다니더라.

 

한 사람이 가로되, 달관한 사람들은 물총새와 같다더라. 육지에서 생장한 짐승들은 오직 산과 들에 있는 것만 보고, 물에 있는 고기들은 오직 물속에 있는 것만 알거니와, 물총새라 하는 짐승은 물에도 들어가고 들에도 다니면서 본 것도 만커니와 재주도 신통하다더라.

 

 

두 사람이 말을 마치지 못하여 앞길에 석양이 빗긴지라 한탄하여 가로되, 개구리도 많이 있고 탁목조도 많컨마는 물새는 어디 있뇨. 불운한 이 세상에 태평세월 언제 볼꼬 한바탕 통곡하고 각각 돌아가더라."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