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設險函關壯(설험함관장) 험하게 만들어져 함곡관(函谷關)처럼 웅장하고
行難蜀道奇(행난촉도기) 험한 길은 촉도(蜀道) 같이 기이하네
顚隮由欲速(전제유욕속) 빨리 가려 욕심내면 넘어져 떨어지니
跼蹐勿言遲(국척물언지) 엉금엉금 기어가더라도 늦다고 꾸짖지는 말게
조선 태종ㆍ세종 때의 문신 어변갑(1380~1434)이 지은 “관갑잔도(串岬棧道)”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명승 제31호 “문경 토끼비리”를 묘사한 것입니다. “문경 토끼비리”는 수십 년 동안 인적이 끊어져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예전엔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는 길에 꼭 넘을 수밖에 없었던 길이지요. 더구나 다음과 같이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형승조에도 기록될 정도로 역사성이 있는 길입니다.
“관갑천은 용연의 동쪽 벼랑을 말하며 토천이라고도 한다. 돌을 파서 만든 잔도(棧道, 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가 구불구불 6, 7리나 이어진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남쪽 원정 때에 이곳에 이르렀는데 길이 막혔다. 마침 토끼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진군할 수 있었으므로 토천이라 불렀다.” 고려 태조에게 토끼가 길을 일러주지 않았다면 고려라는 나라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비리’는 ‘벼루’의 문경 사투리로 낭떠러지 아래 강이 흐르거나 바닷가를 끼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벼랑과는 다른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