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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쓰는 ‘쪽팔린다’에서의 “쪽”

[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23]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쪽팔린다는 말을 널리 쓴다. 귀여겨들어 보니 부끄럽고 쑥스럽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었다. 누가 맨 처음 그랬는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니 아주 재미있는 말이다. 이때 은 반드시 얼굴을 뜻하는 것일 듯하니, 한자 ()’얼굴 면이라고도 하고 쪽 면이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팔린다는 말은 값을 받고 넘긴다는 뜻이니, 남의 손으로 넘어가 버려서 제가 어찌해 볼 길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쪽팔린다는 말은 얼굴을 어찌해 볼 길이 없다는 뜻이다. ‘얼굴을 못 든다거나 낯 깎인다거나 낯 뜨겁다거나 하는 말들이 일찍이 있었는데, 이제 새로 쪽팔린다는 말이 나타나서 우리말의 쓰임새를 더욱 푸짐하게 만들었다.

 

우리말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이 있다. ‘무엇이 쪼개진 조각의 하나라는 뜻으로 그 사과 한 쪽 먹어 보자.” 하고, ‘시집간 여자가 땋아서 틀어 올린 머리라는 뜻으로 쪽을 찌고 비녀를 꽂으니 예쁘구나!” 하고, ‘여뀟과에 드는 한해살이풀의 하나쪽빛 물감이 참으로 예쁘다.” 하고, ‘책이나 공책 따위의 한 바닥이라는 뜻으로 그럼 이제부터 아홉째 쪽을 읽어 보자.” 하고, ‘서로 갈라져 맞서는 둘 가운데 하나라는 뜻으로 너는 도대체 어느 쪽 사람이냐?” 하고, ‘한자말로 방향이라 하는 뜻으로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한다.

 

이 밖에도 국물 따위를 뜨도록 만든 부엌세간의 하나(‘국자의 사투리)’이고, ‘아편을 뜻하는 변말(은어)’이다.

 

여기서는 한자말 방향한테 잡아먹혀서 없어진 만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이 홀로 살아남지는 못했으나 한자말에 붙어서 끈질기게 살아 있어서 이야기해 볼 만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동쪽’, ‘서쪽’, ‘남쪽’, ‘북쪽같은 모습으로 한자에게 달라붙어서 살아 있다. 한자를 우러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들 낱말이 중국서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예 없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다.

 

동쪽은 본디 우리말로 새쪽이었고, ‘남쪽은 본디 우리말로 마쪽이었고, 서쪽은 우리말로 저쪽이었고, 북쪽은 우리말로 노쪽이었다. 그리고 남쪽과 북쪽은 또 앞쪽뒤쪽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동남쪽새마쪽이고, ‘남서쪽마저쪽이고, ‘서북쪽저노쪽이고, ‘북동쪽높새쪽이었다.

 

이들 이름 가운데 그래도 가장 씩씩하게 살아남은 것은 . ‘새 날’, ‘새 해’, ‘새 아침’, ‘새 터’, ‘새 옷’, ‘새벽’, ‘새롭다같은 는 모두 본디 해가 처음 솟아오르는 그 쪽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쪽의 이름이라는 본살을 또렷하게 드러내 주는 낱말은 바람의 이름인 샛바람뿐이었다.


 

그리고 샛바람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바람 이름에서 한자말에 잡아먹힌 쪽의 이름을 간신히 찾아낼 수가 있었는데,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 가운데 암행어사가 되어 거지꼴로 춘향이 집을 찾아온 이몽룡이 월매가 구박 섞어 내온 밥을 짐짓 고픈 듯이 먹어 치우는 대목에 나오는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다.”라는 말에서 마파람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까지 겨우 찾아낸 바람의 이름을 불어오는 쪽에 따라 꼽아 보면 이렇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샛바람’, ‘가새바람’, ‘된새바람이 있다. ‘가새바람은 샛바람 가운데서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이고, ‘된새바람은 샛바람 가운데서 되게(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마파람’, ‘앞바람’, ‘갈마파람’, ‘된마파람이 있다. ‘앞바람은 마파람의 또 다른 이름이고, ‘갈마파람은 마파람 가운데서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이고, ‘된마파람은 마파람 가운데서 되게(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하늬바람’, ‘높하늬바람’, ‘가수알바람이 있다. ‘높하늬바람은 노쪽과 하늬쪽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고, ‘가수알바람은 하늬바람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높바람’, ‘뒤바람’, ‘높새바람’, ‘막새바람이 있다. ‘뒤바람높바람의 또 다른 이름이고, ‘높새바람은 노쪽과 새쪽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리고 막새바람은 높바람 가운데서 샛바람에 가장 가까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