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압박 속에서도 북촌의 한옥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1920년대 당시 조선의 ‘건축왕’이라 불린 독립운동가 기농(基農) 정세권 선생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1919년 종합 건축사 ‘건양사’를 설립, 지금의 북촌 가회동, 계동, 삼청동, 익선동 일대의 땅을 대규모로 사들인 뒤 중소형 한옥만으로 구성된 한옥지구를 조성해 주택난에 시달리던 서울의 조선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했다. 오늘날 북촌을 있게 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디벨로퍼(developer)인 셈이다.
서울시가 역사, 부동산, 건설 등 각 분야 민관협력을 통해 북촌 한옥마을의 숨은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기농 정세권 선생의 업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기념사업을 처음으로 추진한다.
그동안 경관 위주로 북촌 한옥을 바라봤던 물리적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문화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적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세권 선생의 업적과 그가 일군 북촌 한옥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26일(금) 오전 10시 서울시청에서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한건설협회 서울특별시회 ▴국사편찬위원회 ▴종로구와 ‘정세권 기념사업 추진을 위한 공동협력협약’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날 협약식에는 정세권 선생의 친손녀인 정희선 덕성여대 명예교수가 참석해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협약서에 따라 서울시 등 5개 기관은 토론회, 전시회 등 정세권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개최하고, 투어‧전시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공동 모색한다. 우선, 오는 2월27일(화) 북촌에서 기농 정세권 선생을 주제로 한 한옥투어와 토론회를 개최한다. 내년에는 3.1운동 100주년과 연계해 기념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기농 정세권(鄭世權) 선생은 1888년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나 1930년 조선물산장려회, 신간회 활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1919년 종합건축사 ‘건양사’를 설립한 후 조선인들에게 중소형 한옥을 저렴하게 제공하며 일본으로부터 북촌지역을 지켜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돼 뚝섬일대 사유지 약 35,000여 평을 일제에 강탈당하면서 사업에 타격을 입었다. 조선물산장려회 활동 등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일식주택 건설에 맞서 한옥을 대규모로 보급하면서 오늘날 북촌을 있게 한 주인공이지만 그 업적에 비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농 정세권 선생을 재조명하는 의미있는 사업이 될 것”이라며 “아울러 민관협력을 통해 서울의 역사문화 도시재생과 디벨로퍼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