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선시대엔 장애인들에 대한 시각이 지금과는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태종실록》 태종 2년(1402년) 7월 2일 기록에 보면 “죄수들을 석방하고, 저자(시장)를 옮기고, 소경들을 명통사(明通寺)에 모아 비를 빌었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명통사”란 조선 초기에 서울에 있었던 맹인들의 점술 교육기관과 집회소였던 절인데 태종 13년에는 명통사의 맹인들에게 쌀 30석을 주었고, 태종 17년에는 명통사를 개수하도록 하고 노비 10명을 주었으며, 세종 때에도 명통사 지원은 계속했지요. 특히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점술가들 곧 김숙중, 김학루, 박종선, 지화, 승려 유담 등이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지화는 태종ㆍ세종ㆍ단종 3대에 걸쳐 왕실의 크고 작은 일에 참여할 정도였다지요.
다른 기록에도 그런 내용은 많은데 조선 중기 유몽인은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다리 하나가 짧은 장애인을 마땅히 ‘다리 하나가 길다’고 말해야 한다.”라고 했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사소절(士小節)》에서 “장애인을 대할 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종실록》 13년(1431년) 12월 25일 기록에는 ”옛날의 제왕은 모두 장님으로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제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가 함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