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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나는 한때 ‘따봉판사’로 불렸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따봉’이란 포르투칼어 단어가 있습니다. ‘정말 좋다’는 뜻일 텐데, 아마 우리나라 국민이 제일 많이 아는 포루투칼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따봉’이란 단어가 우리나라에 유행하게 된 것이 1989년 롯데칠성음료의 델몬트 오렌지 주스 광고 때문이지요. 당시 광고 화면에 브라질 오렌지 농장이 나오는데, 농장에서 오렌지 품질을 검사하던 남자가 ‘엄지 척’ 하면서 ‘따봉’이라고 외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따봉’이 대유행하면서 사람들도 가게에서 ‘따봉주스’를 많이 찾았답니다. 그런데 정작 따봉주스가 없어 롯데칠성음료로서는 기껏 광고를 히트 치고도 큰 재미는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뒤늦게 ‘따봉주스’로 상표 등록을 하려고 했으나, ‘따봉’은 상품의 성질을 직접적으로 표시하는 단어라고 하여 상표 등록이 거절되었다고 하고요.

 

이렇게 시중에 ‘따봉’이란 말이 유행할 때에 저도 한 때 ‘따봉판사’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따봉판사’로 불렸다면, 뭔가 제가 재판을 잘 했거나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그 사연을 말씀드리지요.

 

제가 부산지방법원에서 민사단독판사를 할 때입니다. 새로 민사단독재판장을 맡으면서, 전임 재판장으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아 열심히 기록을 검토하였습니다. 판사들이 사무분담 변경으로 새로운 재판 업무를 맡게 되면 보통 몇 달 동안은 정신없이 바쁩니다. 전임 판사에게 인계 받은 사건들을 재판에 차질이 없도록 하루빨리 파악해야 하니까요.

 

사건 기록이 얇거나 쟁점이 간단한 사건들만 있다면 다행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치열하게 다투면서 재판을 하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국민들은 신속한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데, 판사들이 새로 사건을 인계받아 이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재판을 늦춘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요.

 

그때도 사건을 인계받아 주말도 없이 매일 야근하며 사건 파악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 건물명도 청구 사건이 있었습니다. 임대인인 원고가 임차인인 피고에게 나가달라고 명도청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 아직 임대 기간이 남아 있었고, 임차인에게 월세를 내지 않았다는 등의 책임도 없었습니다. 달리 원고가 명도청구 권원이 있다는 다른 주장도 하지 않고 있었고요. 그래서 이 사건은 제가 재판 들어가는 첫 기일에 결심(結審)하고, 판결 선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하려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법정에서 원고에게 “왜 피고를 쫓아내려고 하느냐?”며, 판결 선고기일을 지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있다가 피고와 피고 아내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무 사전 약속도 없이 재판 당사자가 재판장을 만나겠다고 하니, 방호원은 안 된다고 하고 그 대신 저희 재판부 서기가 피고 부부를 만나 얘기를 듣고 나에게 전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 부부는 꼭 나를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실랑이를 벌이던 서기가 나에게 와서 얘기를 하기에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제가 법정에서 “왜 피고를 쫓아내려고 하느냐?”고 얘기한 것을 판사가 자기들을 쫓아내려는 원고를 편들고 있다고 오해하고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피고 부부의 얘기를 충분히 감안하여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피고 부부는 확답을 받기 전에는 갈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판결 선고 전에 미리 한쪽 당사자에게 판결 결과를 얘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피고는 수긍하고 가려는데, 그 아내가 막무가내입니다. 할 수 없이 방호원들이 와서 이들을 강제로 끌고 나갔습니다. 참 집요한 여자더군요. 아마 한 집에서 원, 피고 가족이 같이 살면서 원고가 피고 아내의 집요함에 견디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애초 생각대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판결 선고 얼마 뒤 편지 한 통이 사무실에 왔습니다. 바로 피고 아내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그 때 제 방에 와서는 약자인 자기들 얘기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며 펄펄 뛰던 피고 아내가 편지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저를 칭찬하며 저를 ‘따봉판사’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는 한 차례만 온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유치원에 다니는 자기 아이에게도 삐뚤빼뚤한 글씨로 따봉판사에게 편지를 쓰게 하더군요.

 

그뿐 만입니까? 자기가 나를 생각하며 손수 털실로 짠 것이라고 하며 선물을 보내오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그 선물을 받았다가는 자칫 그 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봐(^^) 그대로 재포장하여 반송하였지요. 그리고 또 한 번의 편지에는 자기가 텔레비전에 나가 제 자랑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가 있지 않았습니까? 한번은 ‘아침마당’에서 주택 임대차 문제를 다루었는데, 자기가 그 프로 방청객으로 나갔답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 이렇게 훌륭한 판사가 있다고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덕분에 저는 동료판사들 사이에 한 동안 따봉판사로 불렸던 것이지요.

 

이렇게 편지와 선물이 얼마쯤 이어졌을까? 6개월? 10개월? 하여튼 제가 편지에 일체 답장을 안 하고, 받은 선물도 반송하자 결국 그 뒤에는 편지가 끊겼습니다. 지금은 이들 피고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 집 마련하여 이제는 임대인과 갈등 없이 잘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