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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놈의 얼굴을 한 불한당이다

허홍구 시인의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 톺아보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치장하고 모양을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기 저 거울 속에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놈

나도 모르는 사이 또 언제 등 뒤에서 나타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저 도둑놈 얼굴의 나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꽃밭으로 뛰어드는 저 불한당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내가 무섭다.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

 

허홍구 시인은 그렇게 고백한다. 도둑놈의 얼굴을 한 자신을 불한당이라 하고, 거울 볼 때마다 문득 문득 나타나서 또 나를 놀라게 하는 더럽고 치사한 자신이 무섭단다. 그러면서 “얼마나 더 늙고 병들어야 저 욕심 놓아 버릴까”라면서 혀를 끌끌 찬다. 그는 시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삶 속에서도 늘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고백하곤 한다. 그렇게 소탈함을 지니고 사는 시인이다.

 

그 허홍구 시인이 북랜드를 통해서 아홉 번 째 시집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를 내놓았다. 시집에는 그는 일흔이 넘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다짐하는 <나이 일흔>이라는 시도 선보인다. 시집에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만 하는 게 아니다. 나긋나긋 노년 친구들에게 대해 “친구가 있으세요 / 그럼 됐습니다.”라고 다독거림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허홍구 시인이 그저 그렇게 소박한 사람만은 아님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뭐가 이렇노>라는 시에서 그는 “독립 유공자 후손 잘 사는 것 봤나? 못 봤심더 / 매국노 후손 못사는 거 봤나? 못 봤심더 / 양심적인 사람 잘 사는 거 봤나? 못 봤심더 / 나라 팔아먹은 부정부패의 원흉 못 사는 거 봤나 못 봤심더 / 씨이팔 뭐가 이렇노”라고 읊조린다. 그러면서 시 끝에 “소설가 송일호 씨와 대폿집에 앉아 속을 씻어 뱉어내었다. 참 시원타”고 털어 놓는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시를 쓰고 시집을 내놓은 까닭이 무엇일까? <까닭>이란 시에서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내 맘속 뜨거운 불꽃이여.”라고 말한다. 또 <배설>이라는 시에서 그는 앞앞이 말 못할, 차마 말 못할 / 가슴 속 사연들 풀어 놓고 나면 / 돌덩이 하나 들어낸 듯 가뿐하고 시원하다“라고 애기한다.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시집이 눈에 띄는 또 다른 매력은 여태껏 내놓은 인물시집의 연장으로 권녕하, 권순진, 길상화 보살, 김상진, 김석환 등 사람 냄새 나는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권천학, 이윤옥, 김구부 시인 등이 역으로 허홍구 시인을 이야기 하는 글도 실려 었다.

 

 

시인은 <나이 일흔>이라는 시에서 “날마다 받은 축복이 쌓이고 쌓여서 / 벌써 일흔, 고희(古稀)의 나이를 먹었다. / 얼음이 녹으면 다시 강물로 흐르듯이 / 내 몸을 바꾸어 가며 영원으로 흐르리라.”라고 다짐한다. 그의 아름다운 그리고 순순한 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허홍구 시인은 이 책을 그저 ‘시집’이 아닌 “말꽃 묶음”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우리말을 사랑했던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의 뜻을 따라 그렇게 쓴다고 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우리말을 사랑하는 시인답게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는 보기 어렵다. 어렵게 쓴 것이 체질화된 그 어떤 시인과는 달리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면서도 그 속엔 문학적 아름다움이 쏠쏠하고, 그러면서 그의 깊은 철학적 속내도 들여다보인다.

 

정말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또 허홍구 시인의 따뜻하면서도 해학성도 돋보이는 조언을 듣고 싶다면 말꽃 묶음 《사랑하는 영혼은 행복합니다》을 가까이 하면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