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꿈도 앞으로 간다
(1)
시간은 앞으로 간다
오늘이 가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와서 오늘이 된다
기억은 뒤에서 온다
시간이 지나가며 새겨 놓은 것들을 끌고
이 순간까지는 오지만
오늘을 앞설 수 없다
(2)
아내가 유난히 뒤척인 밤 새벽 이었다
“엄마. 성은이 안 들어 왔지?
사고 나서 죽었대.
친구들이랑 놀러 가다가 차가 물에 빠져 다 죽었대.“
아내는 바다를 사랑했다
자주 까막바위를 찾아
지그시 파도가루를 맞곤 했다
그날 이후로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3)
꿈 하나가 또 졌다
꽃망울 한 송이가 13층 옥상으로 올라가
스스로 나뭇가지를 잘랐다
딸아이를 따라 가겠다던 그 아이였다
소름 끼치는 숙명처럼 아내와 나는
하필 그 순간 그곳을 지나게 되었을까
육체의 소멸과 왜 또 마주하게 되었을까
(4)
이제 둘 남았다
밤낮으로 모여 재잘대던 꽃망울 다섯 가운데
벌써 세 송이가 졌다
시립묘지에 비석 하나가 또 는 것이다
이번 아이는 정말 딸아이와 한 몸 같은 아이였다
딸아이에게 받은 선물들을 곱게 싸놓고
두 번째 아이에게 배운 방법으로 친구들을 따라갔다
아내는 바람을 사랑했다
때때로 하평언덕에 앉아
맨 얼굴에 바람을 맞곤했다
이제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바람이 수근거림을 전했기 때문이다
“저 여자가 성은이 엄마래”
“아이 둘이나 따라갔다며”
누가 맡을 수 있으랴
저 속 썩는 냄새를
누군들 잴 수 있으랴
한숨의 그 깊이를
멀리서 파도소리 들릴 때 마다
언덕 위로 바람 불어올 때 마다
포근히 아내를 안는다
(5)
시간이 앞으로 흐르듯
우리도 앞으로 가야한다
딸아이를 삼킨 바닷가에
다시 유람꾼들이 몰려와 환호하는 것도
꽃물이 흥건하던 13층 앞길에
아무 일 없었던 듯 바쁜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다 시간이 앞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되지만
어제가 내일이 될 수 없기에
지난 아픔은 묻어둔 채
앞으로 가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