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추강이 적막어룡냉하니
인재서풍중선루를
매화만국청모적이요
도죽잔년수백구를...“

무대에서는 젊은 예인 유지선이 ‘관산융마’를 잔잔히 소리하고 있다. 서도소리에서는 유일한 시창(詩唱) ‘관산융마’, 부르기가 난해하다는 소리다. 동정호 악양루에 오른 두보를 상상하며 두보의 입장에서 전란에 휩싸인 나라의 불행과 두보의 불우한 처지, 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고 있는 수준 높은 소리를 류지선은 온몸으로 토해내고 있다. 부르기도 쉽지 않지만 흔히 들을 수도 없는 ‘관산융마’에 객석은 숨을 죽인다.
어제 9월 2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는 김지원, 장효선, 김유리, 류지선, 전소현, 조현정, 박지현, 김초아의 “서도소리 젊은 예인전”이 열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전수조교 유지숙 명창이 애지중지 키워온 제자들의 무대를 만들어준 것이다. 작은 극장이긴 하지만 개석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청중들의 수준도 일품이다. 물론 공연자들이 혼신을 다해 부르기도 하지만 여느 공연장과 달리 숨소리도 삼가는 청중들의 몰입도는 다른 공연장과는 견주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더구나 이 공연은 음향기기를 쓰지 않고 직접 육성으로 서도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물론 공연하는 사람이야 어려움이 있겠지만 청중들로선 왜곡되지 않은 소리를 무대에 바짝 다가가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노래는 박지현ㆍ김초아의 ‘긴난봉가ㆍ몽금포타령’, 전소현의 ‘영변가’, 조현정의 ‘초한가’, 김지원의 ‘배따라기’, 김유리의 ‘ 공명가’, 류지선의 ‘관산융마’, 장효선의 ‘수심가ㆍ엮음수심가ㆍ
초로인생‘이 장구 김민우, 피리 최광일의 반주에 맞춰 공연장을 압도한다.
흔히 민요공연에 따르는 그저 가벼운 흥겨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좌창으로 불러 진중하고 깊이 있는 소리들로 무대를 채운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듣는다면 젊은 예인들의 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경지다. 청중들의 추임새도 스스로 자제한다. 다만 소리가 끝났을 때의 환호성은 극장이 떠나갈 듯하다.

특히 이날 공연에 청일점 남자 소리꾼 김지원이 큰 눈길을 끌었다. 민요계 그것도 서도민요계에 보기 드문 남성 소리꾼이다. 스승 유지숙 명창에 따르면 배운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담백하게 불러내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이날 객석에는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 회장(단국대학교 명예교수)이 특별한 걸음을 했다. 서 회장은 “서도소리는 우리가 자주 들을 수 없는 소리일뿐더러 본 고장 사람이 아니면 표현해내기 어려운 소리인데도 젊은 소리꾼들이 제법 잘 소화해 냈다. 특히 류지선은 ‘관산융마’를 제법 본바닥 시창에 근접한 소리를 해 칭찬해주고 싶다. 다만 민요란 선소리로 흥을 드러낼 필요가 있는 것인데 모두 좌창으로 너무 그 흥을 지나치게 억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공연은 유지숙 명창이 젊은 예인들을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지도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평가했다.
또 전통연희페스티벌 서연호 추진위원장(고려대학교 명예교수)과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김해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이날 공연에 대해 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울 창신동에서 온 민숙희(57) 씨는 “원래 서도소리를 좋아하여 공연장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오늘 공연은 젊은 소리꾼들이 서도소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특히 민요에선 보기 드물게 좌창으로 서도소리의 진중한 내면을 표현하여 그 깊이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게 한 점에 큰 손뼉을 보낸다. 다만, 소리꾼들이 아직 젊기에 인생을 오래 산 맛을 느끼기에는 조금은 모자란 듯한 소리가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선 공연 내내 흐트러짐 없이 숨죽여 소리를 듣는 청중들을 보면서 젊은 소리꾼들의 시도는 분명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중들은 중간중간 소리꾼이 바뀌는 틈 속에서도 옆 사람과의 귓속말도 자제하는 모습들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9월의 끝자락 어느 멋진밤 우리 음악 서도소리는 한껏 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진 우종덕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