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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삼한갑족(三韓甲族), 대대로 내려오는 훌륭한 집안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4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 좌창 중, <십장가-十杖歌>의 앞부분, 곧 1~2대의 매를 맞고 항거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십장가>란 판소리 춘향가 중 한 대목으로 새로 부임해 온 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요구한 것이 거절되자, 10대(十)의 매(杖)로 폭력을 행사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을 발췌하여 경기창법으로 만들어 부르는 노래이다. 이 대목은 춘향가의 핵심 주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인의 정절(貞節)이 권력에 굴복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향은 끝까지 인내하며 정절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매질을 당할 때마다 한 대를 맞으면 일편단심(一片丹心), 일종지심(一從之心), 일부종사(一夫從死), 일각일시, 일일칠형(一日七刑)과 일(一)자로 시작되는 관련 내용과, 두 대를 맞고는 이부불경(二夫不敬), 이군불사(二君不事), 이부지자(二父之子)와 같은 이(二)자로 시작되는 내용을 외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춘향이가 세 번째 매를 맞고는 사또의 부당함을 외치는 대목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세 번째 매와 관련해서는 삼(三)자로 시작되는 삼한갑족, 삼강, 삼춘화류승화시, 삼배주, 삼생연분과 같은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의 노랫말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셋을 맞고 하는 말이, 삼한갑족 우리 낭군, 삼강에도 제일이요. 삼춘화류승화시에 춘향이가 이도령 만나 삼배주 나눈 후에, 삼생연분 맺었기로 사또 거행은 못 하겠소.”

 

 

위의 노랫말 중에서 삼한갑족(三韓甲族)이란 춘향의 낭군, 이 도령은 대대로 내려오는 훌륭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 집안은 삼강(三綱), 곧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지킬 도리를 잘 지키는 집안이라는 점을 신임 사또에게 교육시키듯 열창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삼춘화류승화시(三春花柳勝華時)는 꽃피고 버드나무 가지 휘늘어지는 봄 시절을 의미하는 말이다. 첫여름을 나타내는 말로는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는 시구도 있다.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좋은 시절에 춘향이가 이 도령을 만나 삼배주(三杯酒)를 나눈 후에, 삼생연분(三生緣分)을 맺었다는 점을 신임 사또에게 분명하게 밝히면서 한 지아비의 아내가 된 춘향이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는 신임 사또의 요구는 당치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네 번째 형벌을 가하게 되고, 다시 춘향의 항거는 계속된다. 여기서는 사(四)자와 관련한 내용들을 소리높여 부르게 된다. 이 부분의 노랫말을 감상해 보도록 한다.

 

 

“넷을 맞고 하는 말이, 사면차지, 우리 사또, 사서삼경 모르시나, 사시장춘 푸른 송죽, 풍설이 잦아도 변치 않소. 사지를 찢어다가 사방으로 두르셔도 사또 분부는 못 듣겠소.”

 

위에서 사면차지(四面次知), 곧 남원에 부임해 온 신임 사또로서 동서남북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는 뒷전이고, 책 읽기 공부를 안 해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모르시나, 어째서 서방 있는 여인에게 수청을 강요하느냐고 강변하고 있다.

 

이어서 항상 푸른 색깔(四時長春)을 지니고 있는 소나무, 대나무(松竹)는 바람 불고 눈 내려도 변치 않는다는 점을 사또는 왜 모르냐고 고함을 치며 춘향에게 아무리 강한 형벌을 가한다 해도,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절대 변치 않을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더욱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강력한 표현은 나를 죽여 사지(四肢)를 찢어다가 사방에 두른다 해도, 사또 분부는 못 듣겠다고 단언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이상, 세 번째와 네 번째 매질을 당하는 대목의 노랫말을 경기좌창의 십장가로 알아보았다. 그러면 이 대목의 판소리 사설은 어떻게 짜여 있는가? 이 대목을 읽어 보기로 한다. 보성제 춘향가의 십장가, 한 대목이다.

 

“삼(三)자 낱을 딱 붙여 노니, 삼생가약 맺은 마음, 삼종지법을 알았거든 두 낭군을 섬기리까? 삼월화로 아지 마오. 어서 바삐 죽여주오. 사(四)자 낱을 딱 붙여 노니, 사대부 사또님이 사개사를 모르시오? 사지를 쫙쫙 찢어 사대문으로 걸쳤어도 가망없고 무가내요.”

 

판소리 춘향가의 세 번째 매질에는 삼생가약, 삼종지법, 삼월화, 등이 나오고 있다. 삼생가약(三生佳約)이란 전생과 이승, 그리고 후생 등 세 삶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이고, 삼종지법(三從之法)은 옛 시대의 낡은 도덕으로 여자가 어릴 때에는 부모, 시집가서는 남편, 남편을 여윈 다음에는 자식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삼월화(三月花)란 봄에 피는 꽃으로 누구나 꺾을 수 있는 흔한 꽃을 의미하는 말로, 춘향이를 그러한 하찮은 꽃으로 보지 말고, 어서 바삐 죽여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매질에는 사대부, 사또님, 사대사, 사지, 사대문 등으로 대꾸한다.

 

사대부(士大夫)란 고대 중국 봉건제도에서는 대부(大夫)와 사(士)가 서민과 구분되는 지배계층이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벼슬아치를 모두 부르는 이름으로 지식과 교양을 쌓아 과거에 급제한 문신 관료들을 의미하였다. 사기사는 일을 일대로 바르게 한다는 사기사(事其事)를 뜻하는 말이고, 사지(四肢)는 두 팔과 다리, 사대문(四大門)은 동서남북으로 세운 네 개의 문이다. “사지를 쫙쫙 찢어 사대문으로 걸쳤어도 가망없고 무가내”라고 항변하는 춘향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