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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서에 보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악 이야기

[맛있는 일본이야기 51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300년 전 일본 왕실에는 고대 한반도 출신의 악사들이 즐비했다. 일본의 정사(正史)인 《속일본기(續日本紀)》 731년 7월 29일 기록만 봐도 “아악료(雅樂寮)에 속하는 악생(樂生)의 정원은 대당악(大唐樂) 39명, 백제악(百濟樂) 26명, 고구려악(高麗樂 ) 8명, 신라악(新羅樂) 4명, 탐라악(耽羅樂악) 62명...을 두었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런가하면 740년 12월 4일에는 "왕실에서 신라악을 연주하게 했다", 744년 2월 22일에는 "백제악을 연주하게 했다"는 기록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러한 고대 한국 출신이 담당하던 음악은 고마가쿠(高麗樂, 고구려를 뜻함)라는 이름으로 현재 일본 전통음악인 아악에 전승되고 있다.

 

 

《속일본기》 보다 앞선 기록으로는 《일본서기》 570년 7월, 상락관(相樂館)에서 고구려 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사가 보인다. 그런가 하면 683년, 천무왕 12년(683)조에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음악이 조정에서 연주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일본 왕실과 고대 한국은 잦은 음악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일본후기(日本後紀》에는 809년에 활약했던 고려악사 4명은 횡적(橫笛)ㆍ군후(ꜭ篌ㆍ막목(莫目)ㆍ무(舞)를 가르쳤다고 하며, 악기 연주자는 731년 이후 8명에서 다시 20명으로 증원되었다가 848년 18명으로 감원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마악사(高句麗 樂士)와 고마악생(高句麗 樂生)들이 연주했던 고마악(高麗樂,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함)은 닌묘왕(仁明王) 때 아악료를 개편함에 따라 백제악과 신라악 그리고 발해악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따라서 9세기 이후 고마악(高麗樂)이라는 이름은 삼국악에 발해악을 포함하는 뜻으로 쓰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5년 11월 18일, 국립국악원은 한ㆍ일 두 나라의 국교정상화 50돌을 기념하여 서울(국립극장 우면당, 18일)과 부산(국립부산국악원 예지당, 19일)에서 “아악, 한ㆍ일 영혼의 울림 특별공연”이란 주제로 일본의 고마가쿠(高麗樂)공연을 한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