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 그루 나무의 나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이면서
하루의 길이를 다 못 사는
그것들을 안쓰러워하다니…
금을 그어 놓고
저들끼리도 알아 못 듣는 말을 하면서
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작은 새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차례진 삶의 길 목 그 끝까지
서로가 서로에게서 부끄러움을 배우며
우리는 모두가
한 생을 살려고 여기에 온 것 아닐까
가을국화 한 송이도
풀 매미 한 마리도
며칠로 이어지는 연휴를 맞아 찾아오는 술친구들도 별로 없고 하여 할 일 없이 거울에 마주 서서 혼자 들여다보곤 하였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써보았던 이 시 한 구절이 생각나서 가만히 읊어보았습니다. 이 시의 몇 구절을 외우면서 거울 속에 비쳐진 저 터덜터덜한 모양을 보니 찬찬히 보면 볼수록 잘 난데 한곳 없이 참 여러분들에게 미안하게도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가 그지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생각, 이 별난 부끄럼타기는 요즘 와서 퍽 자주 갈마들더니(서로 번갈아들더니) 설을 쇠고 나이 한 살 더 먹고 나서 더욱 짙어갔습니다.
그처럼 기세 좋던 30대라는 것도 이젠 1년이라는 카드 한 장밖에 남지 않았고 이 나머지 한 장의 카드만 써버리면 “흔들리지 말라”는 불혹의 40대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 불혹의 40대, 듣기에도 좋은 이 40대의 사내란 모름지기 성숙된 이미지의 듬직한 모습의 한번 보아도 믿음이 팍 가는 형상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 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거울 속에 비춰지는 것이란 그저 아직 채 여물지 못한 설익은 돌배 같다고나할 어쭙잖은 모양새뿐입니다. 이제 남은 단 한해사이에 생각처럼 그렇게 단단히 잘 여물어질 수 있을까요. 또 다시 부끄러운 생각에 안타깝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지금 거울 속에 비춰진 저 형상, 저 볼 꼴 없는 모양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들 가운데의 하나인 나일까요.
우리 사람이라는 것도 기실 원숭이가 변하고 변하여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든, 거룩한 조물주께서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주물러 만들어주시었든 지간에 어차피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목숨을 나누어 받은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며 잘 난 것만큼 또 그만큼의 못난데도 많은 족속들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차례진 것이 단 한번인 봄인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정성껏 꽃을 피우는, 그리고 그 빛깔과 향기를 이 산천에 보태주는 이름 모를 작은 풀의 마음가짐을 배워야 할 것이며 태어나서 단 한발자국도 옮겨 못 딛는 한 그루의 나무일지라도 우리로서는 도저히 미치지 못 하는 그 삶의 길이와 푸른 하늘가에 시원히 가지를 뻗는 그 우아한 자세에 경외하고 고개 들어 쳐다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낱 초목도 그러할진대 함께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이웃들이야 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나에게 오늘이 있기까지 시의 눈을 떠서 위에 적은 “한 그루 나무의 나이에도…”라는 구절을 쓸 수 있게까지 사랑을 주고 도움을 주고 가르침을 주고 그리고 아픔을 준 많은 이들, 마치도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햇빛과 이슬과 봄비와 바람과 눈보라까지 모두가 고맙고 고마울 뿐이며 그 앞에선 나 자신은 거울 안의 저 두루뭉술한 모양처럼 계속 부끄럽기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를 물론하고 나로 하여 누군가가 괴로움을 받았다면 그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더 없을 것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한테 아픔을 주고 상처를 준 이들일지라도 그것의 첫째가는 탓이 나한테 있을 것이니 그로 하여 부끄러울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그이들도 지금 한창 나한테 준 아픔 때문에 괴로워 할 것이며 혹시 아직은 그이들이 미처 그것을 느끼고 있지 못하더라도 그 깨닫지 못함을 함께 슬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다 한 생이라는 목숨을 나누어 받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런 것만큼 누구나 다 삶의 의무와 함께 삶의 권리가 있는 것이며 따라서 서로 존경할 의무와 존경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기에 자기만이 옳다고 우기거나 건방지게 저만 잘 난 듯이 으스대고 우쭐댈 것이 아니라 비록 가을국화 한 송이나 풀 매미 한 마리에게서 일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서 부끄러움을 배우며 자기에게 차례진 삶의 길목 그 끝까지 잘 가야할 것입니다.
부끄러움 배우기, 서로가 먼저 자신을 낮추며 서로가 서로에게서 부끄러움을 배우며 또 그 부끄러움을 하나씩 지우며 가는 길, 이 길이 바로 자신을 위한 완성의 길이며 우리 모두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그 한 갈래 길인 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연변일보” 1996년 3월 16일 제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