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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근대 전쟁역사 살펴보기 강화도 갑곶돈대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조선부터 한민족의 고대역사가 살아있고 전란이 있을 때마다 최고의 요새중에 하나였던 강화도에는 해안가 돌출한 곳이면 빠짐없이 탐망을 위한 관측소와, 적의 침입에 대비한 작은 성들이 많이 있다.

 

강화도의 섬 주변에는 현재 48개의 작은 성인 돈대들이 확인되었는데, 돈대는 전체 둘레가 100m 안팎으로, 그 형태는 원형 각형 등 지형에 따라 다양한 소규모의 방어시설로 한국에서는 강화도를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 강화도의 돈대는 주로 병자호란 이후인 숙종 때(숙종 4~5년인 1678~1679) 세워졌다. 이때 한양의 중앙군과 전국의 지방군을 총동원하여 강화도 해안가 지나가는 배들이 잘보이는 전망이 좋은 요충지에 국방을 위한 요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세워진 48개의 돈대는 개화기에는 프랑스군 참략시 병인양요, 미군의 침략시 신미양요, 일본의 침략시 운양호 사건때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으며, 전투에 참가했던 많은 조선군들이 순국하였으나, 일본에 굴복한 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난 뒤 하나 둘 무너지고 훼손 되어갔다. 그런 돈대들이 최근에 다시 그 역사적 중요성을 알게되어 발굴조사를 한 뒤 하나 둘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돈대의 성벽은 한국 성벽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한국의 성벽쌓기는 고구려성부터 거의 변하지 않고 그 기법을 계승하였는데, 성벽의 돌들은 아래는 단단하게 돌다짐으로 기초를 만든 뒤, 성의 아래는  큰 돌을 쌓고, 위로 가면서 차츰 작아지는데, 성벽의 돌쌓기는 위부에서 보았을 때, 직사각형의 돌들을 수평이 되도록 다듬어 쌓았으며, 돌과 돌이 서로 어긋날 때에는 아래돌과 윗돌이 서로 잘 맞도록 다듬어서 쌓았으며, 성벽의 안쪽에는 다듬지 않은 자연상태의 돌들로 채워서 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돈대에 사용된 돌들을 유심히 살펴 보면, 처음에 돈대를 쌓았던 장병들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기계나 장비도 없이 오로지 장병들의 손으로 돈대 주변 바위산에서 큰 돌들을 잘라내고, 비탈길을 장병들이 목도로 운반하였고, 그 돌들의 위 아래, 오른쪽 왼쪽이 서로 잘 맞추어 지도록 하나 하나 정으로 다듬어 이런 엄청난 공사를 했던 것이다.

 

지금은 문화재복원공사 때에도 최신 중장비들과 전동기계를 활용하면서도, 돈대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기간이 적어도 1년은 잡아야 할 것인데, 숙종 당시에는 48개의 돈대를 모두 만드는데 불과 1년여의 짧은 기간에 해내었다니, 옛 사람들의 노고가 얼마나 컷던가 짐작하니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오늘 본 갑곶돈대는 김포에서 강화로 들어가는 강화대교를 건너 바로 옆에 있는 돈대로, 강화의 돈대 중에서는 가장 작은 크기이다. 갑곶돈대의 한편에는 강화전쟁박물관이 있어, 역사이래 한민족이 겪었던 크고 작은 전쟁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강화도가 서울 근교 휴식을 위한 여행지로 맍이 찾는 곳이지만, 이왕 강화를 다녀오는 길이라면, 강화대교 바로 옆에 있는 갑곶돈대 정도는 잠시 들러, 돈대 앞 강화해협의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좀더 시간을 낼수 있다면 전쟁박물관도 들러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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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