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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진짜 사나이여, 인제는 됐다 가거라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12]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1)

온다더니 정말 오는구나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사나운 광풍을 앞세우고 거세찬 눈보라 이끌며 달려오는 겨울아, 너는 참말로 약속을 지킬 줄 알고 줏대가 있는 친구이구나.

열매를 따낸 가지에서 마른 잎을 흔들어 떨구며 낟알을 거둔 이랑에서 지푸라기를 날려버리며 이 벌, 이 산, 이 하늘을 말끔히 청소하는 겨울아, 너는 신나게 휘파람을 불며 달려오는구나.

꽃잎에 아양을 떠는 나비를 멀리 쫓아버리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는 새새끼들을 혼내며 쌩- 쌩- 날파람을 일구며 달려오는 겨울아, 너는 이 땅 위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참으로 슬기를 비기고 힘을 겨루는 씨름판을 벌이었구나.

 

 

(2)

온다더니 정말 오는구나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새뽀얀 눈보라를 들말인 양 휘몰아 윙-윙 기세 좋게 달려온 겨울아, 너는 참말로 진짜 사나이구나.

반 조각의 가식도 없이 통쾌하고 솔직한 곧은 성미 그대로 한때는 제로라 뽐내던 하늘의 태도 부옇게 얼구어 놓고 우쭐거리며 감 뛰던 강물도 꽁꽁 얼구어 놓아 짱-짱 아우성치게 하는 겨울아,

눈갈기를 날리며 무서운 혹한으로 박달나무도 튀게 하는 너를 두려워 구새먹은* 나무통에 기어들어가 발바닥을 핥는 곰같이 미련한 반편 사나이도 있지만 사나운 눈보라를 맞받아 산을 날아내리는 호랑이같이 날쌘 사나이들이 더 많거니 아무 곳에서라도 너를 찾아 떠난 진짜 사나이들 만나거든 먼저 점잖게 인사를 나누고 제식으로 격투를 벌여라.

한해 만에 맞띄우는 이런 판에서 벼렸던 힘과 슬기를 다 모아 팔다리 뻐근하게 딩굴어보아라.

이겨도 시뚝하지* 않고 져도 기를 꺾이지 않는 통쾌한 겨룸이라, 이는 진짜 사나이들만이 맛보는 멋이란다.

 

(3)

인제는 됐다 가거라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네가 말끔히 청소한 이 땅, 이 하늘에서 너를 그처럼 믿어 따르는 봄아가씨의 계절이 고운 꽃을 안고서 아지랑이를 날리며 뒤쫓아오거니 겨울, 너 사나이다운 사나이를 따르는 봄아가씨의 절절한 마음을 알고있지 않느냐.

자, 겨울이 그럼 작별이사도 멋있게 나누자, 아직 끝나지 않은 대결에서 서로가 씩씩하게 성장하리니 이제 다시 만나 비겨볼 그 날을 약속하고 제가끔 힘과 슬기를 키우기에 분발해보자.

잘 가거라.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다시 만나자

겨울, 사나이의 계절아,

 

                                                                                          《흑룡강신문》 1986년 2월 1일

 


<낱말풀이>

 

* 구새먹은 : 속이 빈

* 시뚝하다 : 마음에 언짢아서 모르는 체하거나 토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