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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여순 민중항쟁 때 검사 빨갱이로 몰려 총살

우린 너무 몰랐다 4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보면 여순 민중항쟁 때 죽은 박찬길 검사 얘기도 나옵니다. 검사가 죽었다고 하니까 반군에 의해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아닙니다. 경찰에 의해 총살당한 것입니다. ‘으잉? 경찰이 죽였다고? 그럼 빨갱이 검사였겠구먼.’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박 검사는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검찰의 위력을 생각하면 검사가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것이 선뜻 믿기지 않지요?

 

지금부터 그 얘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여순항쟁 무렵 박 검사는 순천지청에 근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어떤 시대입니까? 없던 빨갱이도 만들어내던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박 검사는 경찰이 송치해오는 사건 가운데 증거가 부족한 사건은 과감하게 무혐의 처분을 하고, 경미한 사건은 기소유예합니다. 이렇게 박 검사의 무혐의 결정과 기소유예가 늘어가니까 경찰의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찰의 불만에 기름을 붓는 일이 생겼습니다. 박 검사가 어느 경찰관을 기소한 것입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어느 경찰관이 길을 가는데 한 남자가 이 경찰관을 보더니만 갑자기 도망가더랍니다. 의심이 든 경찰관은 이 남자를 추적했는데, 남자가 산 위로 도망가자 경찰관은 총을 꺼내들어 사격합니다. 그리고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에게 한 번 더 총을 쏴 죽입니다.

 

그리고는 도망가는 좌익혐의자 하나 죽였을 뿐이라고 합니다. 자기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살려서 딴소리 하게 두는 것보다는 좌익혐의자로 몰아 입을 봉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남자는 좌익 혐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허가 없이 산에서 나무를 베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경찰관을 보자 달아났던 것이지요.

 

진상을 파악한 박 검사는 그 경찰관을 체포하여 기소하고 재판에서 징역 10년을 구형합니다. 이에 경찰에서는 박 검사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박 검사를 적구(赤狗)라고 합니다. 하하! 자기들은 일제의 주구(走狗) 노릇을 해놓고는, 누구 보고 빨갱이 개라고 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박 검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경찰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습니다.

 

여순항쟁이 터진 것입니다. 경찰은 여순항쟁이 진압된 뒤 좌익을 색출, 척결하는 과정에서 박 검사를 살해한 것이지요. ‘손가락총’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주민들을 운동장에 집합시킵니다. 그리고 밀고자에게 좌익을 지목하게 합니다. 그럼 밀고자가 손가락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을 따로 가려내어 현장에서 즉결처분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손가락총’이란 말이 나온 것이지요. ​

 

그런데 이 손가락총은 좌익혐의자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밀고자의 눈에 밉보인 사람 등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향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억울함을 가려내기 위해 재판이 필요한 것인데, 그때는 항쟁 진압 직후로 어수선한 때라고 하지만 재판절차 없이 즉결처분을 했습니다. 이 때 경찰은 순천읍장을 회유했는지 협박했는지, 순천읍장으로 하여금 박 검사가 반군이 순천을 장악하고 있을 때 인민재판에 관여하였다고 허위 증언하게 합니다. 그럼 상황 끝이지요. 그리하여 박 검사는 현장에서 총살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검찰은 박 검사가 억울하게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것을 알 텐데도 꿀 먹은 벙어리였습니다. 당시 검찰은 경찰보다 힘이 약하였습니다. 당시는 이승만을 등에 업은 경찰이 빨갱이들을 색출해낸다며 한창 기고만장할 때니까 검찰도 몸조심한 것이겠지요.

 

이 사건이 밝혀진 것은 유족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무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유족들의 탄원서를 계기로 합동수사본부가 차려졌고, 조사 결과 당시 제8관구 경찰청(현 전남경찰청) 부청장 최천 총경의 모략으로 박 검사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자아~ 그렇다면 박 검사 살해에 관여한 경찰관들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경찰은 최천 총경을 처벌하는 것은 여순사건 당시 희생된 경찰에 대한 모욕이고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집단 반발합니다. 당시 전남경찰은 총기와 각종 장비들을 경찰청 뒷마당에 버려놓고 일체의 훈련과 업무를 거부했다는군요. 결국 경찰의 반발로 사건은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헛! 헛! 박종철군 고문치사 때는 여러 경찰관들이 다쳤는데, 검사가 학살당하였는데도 아무도 경찰을 못 건드리는군요.

 

그런데 이는 역설적으로 경찰의 힘을 제어하는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경찰의 힘이 너무 비대해져, 상황이 바뀌면 자칫 그 경찰의 총이 자기에게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겠지요. 그리하여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검찰이 경감 이하의 경찰관에 대한 교체 요구권까지 갖도록 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검찰과 경찰의 관계가 이번 수사권 조정으로 다시 변화가 왔네요. 무릇 권력이라는 것은 한쪽에 집중되면 말썽이 나기 마련입니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검찰의 힘이 너무 비대해지니까 수사권 독립 얘기가 나온 것이고 결국 검찰의 반대에도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경찰의 권력이 다시 비대해지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또다시 전철을 밟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완벽하게 갖추어야 할 것이며, 끊임없이 검찰과 경찰 권력의 비대화를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