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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 바이러스

자발적 가난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3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인류 역사를 보면 질병의 유행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학자들은 중세 때인 14세기에 유럽에서 창궐했던 페스트로 1347~1351년 동안에 유럽 인구의 1/3인 2,500만이 죽은 것으로 추산한다.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페스트를 능가하여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다. 전 세계에 퍼진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사람은 5,000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많게는 1억 명까지 죽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병은 1918년 3월에 미국 시카고 미군 기지에서 첫 감염자가 나왔는데, 1917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인의 이동을 따라 유럽으로 번지고 이어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당시는 1914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대부분 나라에서 신문들이 보도검열을 받던 때라 독감 소식은 깊게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은 중립국으로서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 통제가 없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도 독감에 걸렸기 때문에 스페인 언론에서는 이 독감에 대해서 자세히 보도하였고 이후 이 독감은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이 독감을 미국 독감 또는 시카고 독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히려 스페인은 이 독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세계 각국에 전달한 공이 있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을 들으면 스페인 사람들은 매우 억울할 것이다.)

 

이 독감에 걸리면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고 환자 피부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죽게 된다. 1918년 3월 첫 감염자 발견 이후 1919년 4월까지 당시의 전 세계 인구 17억 명 중에서 5억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5,0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망자 수는 당시 4년 동안 계속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쟁 사망자 수 1,000만 명과 견주면 엄청난 피해가 아닐 수 없다. 독감 피해가 급격히 퍼지자 연합국과 동맹국은 서둘러 평화협상을 마무리 지었으니, 독감이 전쟁을 끝냈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 조선은 일제강점기였는데, 1918년이 무오년이었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을 ‘무오년 독감’이라고 불렀다. 무오년 가을에 독감이 유행하면서 각 학교가 휴학하였으며 단체와 관청이 업무를 보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독감 감염자는 742만 명이었는데, 당시 전체 인구가 1,678만 명이었으니 무려 44%가 감염되었다. 사망자는 14만 명(전체 감염자의 1.87%)에 이르렀다.

 

독감은 충남지방에서 기승을 부려서 서산시에서는 인구 대부분인 8만 명이 독감에 걸렸고, 예산군과 홍성군에서 수천 명이 죽어서 주검을 처리할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평양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감염되었고 집배원들이 감염되어 업무가 마비된 우체국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 독감의 유행으로 들판에 곡식이 여물어도 거둘 사람이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쌀값은 폭등했고 인심은 흉흉해졌다. 일본인들의 횡포에 고통받던 조선인들은 굶주림까지 이어지자 일제에 대한 분노가 무르익어갔다. 이러한 분위기는 3.1만세운동의 배경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 있던 김구 주석도 이 독감(서반아 감기)에 감염되어 20일 동안 앓았는데,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내 일생에서 제일 행복이라 할 것은 기질이 튼튼한 것이다. 거의 5년의 감옥 고역에 하루도 병으로 일을 못한 적 없었고, 인천 감옥에서 학질에 걸려 반나절 동안 역을 쉰 적이 있을 뿐이다. 병원이란 곳에는 혹을 떼러 제중원에 1개월, 상해에 온 후 서반아 감기로 20일 동안 치료한 것뿐이다.”

 

스페인 독감은 태풍처럼 지구를 휩쓴 뒤에 1919년 4월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당시는 전자 현미경이 발견되기 이전이라서 사람들은 독감의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 스웨덴 출신 미국인 요한 훌틴은 그 병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었다.

 

1951년 27살의 대학원생 훌틴은 바이러스 연구자로부터 색다른 정보를 얻었다. 만약 스페인 독감 희생자의 주검이 영구 동토에 묻혔다면 썩지 않았을 것이고, 그 폐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훌틴은 북극에 가까운 알래스카의 이누이트 땅으로 찾아갔다. 이누이트 사람들은 스페인 독감으로 인구의 60%가 죽었다. 훌틴은 한 마을에 가서 땅을 파헤치고 주검의 폐에서 조직을 떼어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검출해 내지는 못하였다.

 

그 뒤 46년이 지난 1997년에 제프리 토벤버그라는 병리학자가 포르말린 용액 속에 저장된 독감 희생자의 폐 조직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훌틴이 연구하던 1950년대에는 바이러스를 분석할 기술이 없었지만 이후 바이러스의 염기 서열을 읽어내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제는 73살의 노인이 된 훌틴은 토벤버그의 논문을 읽고서 즉시 편지를 썼다. “스페인 독감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곳을 알고 있소.” 훌틴은 수십 년 전 자신이 방문했던 이누이트 마을의 공동묘지를 찾아서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희생자의 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러스를 전달받은 토벤버그와 그의 동료들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2005년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8개 유전자 배열을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87년 만에 깨어난 바이러스는 실험체의 폐에서 4일 만에 39,000배로 증식하는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스페인 독감의 원인인 바이러스가 그즈음 유행하던 조류독감과 매우 유사한 바이러스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결국 인간에게 적응된 조류독감”이었던 것이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학자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의 모습에 대하여 진지하게 토론한다. 2020년 6월에 발간된 《코로나 사피엔스》에 따르면 코로나가 발생한 이유는 인간이 자연을 파헤치고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이 사는 곳과 야생동물이 사는 곳은 분리되어 있었는데, 인간이 개발을 핑계로 자연을 침범해 생태계를 파괴하니 야생동물 사이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겨온 것이다.

 

 

화석 연료의 과소비로 인한 기후변화와 자연 생태계의 파괴로 인해 앞으로 3~5년마다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백신을 개발해도 바이러스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다. 백신을 개발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죽고 바이러스는 계속 변신하여 인간을 괴롭힐 것이다.

 

코로나와 싸우는 인류는 지금까지 당연시했던 경제성장과 개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라의 가장 큰 목표는 경제성장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부추기면서 과잉 생산을 초래했다. 그러나 과잉 생산은 필연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과잉 소비와 과잉 폐기로 이어진다.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클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지구가 가진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지속할 수 있는 개발이 추구되어야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삶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자가 되는 일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원을 펑펑 소비하는 부유한 삶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가난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만족에 있음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종교는 소유를 강조하기보다는 만족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방콕하다 보니 갑자기 법정스님이 생각났다. 법정 스님이 쓰신 책 《무소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소유를 문자 그대로 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은 소유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적은 소유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칠십 평생을 살아보니, 적게 소유해도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