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서울역사박물관(관장 배현숙)은 서울역사문화특별전으로 조선시대 중앙군 가운데 한양을 지켰던 삼군영을 소개하는 <한양을 지켜라_삼군영 소속 한 군인 집안의 고군분투기>를 연다. 이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1층)에서 내년 2021년 3월 21일(일)까지 열린다.
삼군영은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제 정비 과정에서 형성된 중앙 군영으로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을 말한다. 삼군영의 군인들은 한양에 살며 임금의 호위와 궁궐 수비, 도성 방어와 치안 유지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삼군영]
1) 훈련도감 훈련도감은 임진왜란1592~1598년이 한참 진행 중이던 1593년에 창설되었다. 조선의 군대가 일본군의 조총에 고전하게 되자 이에 대한 대책 마련으로 새롭게 군대를 만든 것이다. 이때 왜구 소탕에 공을 세웠던 명나라 장수 척계광(戚繼光)의 《기효신서(紀效新書)》를 참고하여 삼수병(三手兵)[조총과 활, 칼과 창을 사용하는 병종들] 체제가 구성되었다. 본래는 임시기관이었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존속하면서 중앙군의 핵심이 되었다. 이로써 5,000여 명의 상비군이 한양에 계속 주둔하게 되었다.
2) 어영청 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았던 인조정권은 격변하는 나라 안팎 정세에 대비하기 위해 도성 방비 강화를 모색하였다. 어영청은 후금과의 전투에 대비하여 모집하였던 260여 명의 어영군을 해산시키지 않고 1624년 이괄의 난 때 임금을 호위하도록 한 것이 창설의 시초였다. 이후 1652년 효종의 북벌 계획으로 확대 증설되면서 중앙 군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3) 금위영 금위영은 삼군영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세워진 군영으로, 한양의 수비를 강화하고 상비군인 훈련도감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고자 창설되었다. 1682년에 병조의 정초청(精抄廳) 군인과 훈련도감의 훈련별대(訓鍊別隊)를 합쳐 금위영이 설치되면서, 훈련도감, 어영청과 함께 한양을 수비하는 삼군영 체제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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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이지건 일가의 고문서 71장을 통해, 삼군영과 소속 군인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살펴본다. 이지건 일가의 고문서는 모두 71장의 준호구와 고신, 호적표 등으로, 2000년에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된 유물이다. 이 유물은 무반벌족에 비해 그 전하는 예가 매우 드문 무반 가문의 고문서 일괄 자료이다.
* 무반벌족 : 나라에 공이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무관 집안
오늘날의 주민등록등본과 비슷한 준호구와 호적표, 일종의 임명장인 고신을 통해 이지건 일가의 사람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200여 년 동안 대대로 한양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남긴 준호구에는 과거에 합격한 일, 집과 노비의 소유 여부 등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도 담겨 있어 군인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전시의 구성은 <1부. 영산의 양반 이지건이 삼군영 군인이 되기까지>, <2부. 대대로 삼군영의 군인이 되다>, <3부. 어려워진 이지건 일가>로 크게 3개의 주제로 나뉜다.
1. 영산의 양반 이지건이 삼군영 군인이 되기까지
1부. <영산의 양반 이지건이 삼군영 군인이 되기까지>에서는 이지건의 상경과 한양에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당시 삼군영 군인들의 거주 상황을 살펴본다. 이지건은 경상도 영산(현재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일대)의 양반으로, 1693~1699년 사이 한양에 올라와 삼군영의 군인이 되었다. 이지건의 집은 동부 연화방에 있었는데, 오늘날의 원남동ㆍ연지동ㆍ효제동ㆍ충신동 일대에 해당한다. 이 지역은 창덕궁과 창경궁의 옆으로 훈련도감과 어영청의 본영과 분영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이지건과 같이 지방에서 상경한 군인들은 한양에서 집을 마련하기에 상당히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지건 또한 처음 상경했을 때는 빈집 혹은 빈터를 빌려 생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매입하고 혼인도 하는 등 성공적으로 한양살이에 적응했다.
2. 대대로 삼군영의 군인이 되다.
2부. <대대로 삼군영의 군인이 되다>는 훈련도감 군인의 1년과 한 달, 하루를 통해 삼군영 군인들의 군사적 소임을 살펴본다.
한양 상경 후, 이지건의 일가는 대대로 군인이 되었다. 특히 손자 이우복은 훈련도감의 마병이었으나, 1759년을 중심으로 무과 시험 합격 이후 6품의 관직까지 올랐다. 삼군영의 군인들은 도성 방어, 궁궐 파수, 군사 훈련 이외에도 준천(물이 잘 흐르도록 청계천의 바닥을 깊이 파낸 사업)이나 금송(소나무의 벌목을 금지한 것) 등 도시 유지를 위한 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전시에서는 이우복이 과거에 합격한 1759년 삼군영 군인들이 참여했던 각종 행사 및 군사 훈련 등을 소개한다.
주요 유물은 임진왜란 직후 초대 훈련대장이었던 조경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인 유의(油衣, 기름에 결은 비옷) 한 벌(※유물의 보존을 위해 1달간만 전시), 김홍도가 그린 <북일영도>(훈련도감의 분영을 그린 그림)과 <남소영도>(어영청의 분영을 그린 그림)를 볼 수 있다.
또한, 보물 제1901-1호인 《영조정순후가례도감도청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를 통해 임금의 행차에서 삼군영 군인들이 호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조총과 활ㆍ불랑기자포 등 군사관련 유물을 망라한 약 146건의 유물을 볼 수 있다.
3. 어려워진 이지건 일가
3부 <어려워진 이지건 일가>는 이우복 이후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고 일반 군인으로 살아갔던 그 후손들의 이야기와 그를 통한 삼군영 군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담아냈다.
삼군영 군인들은 적은 급여로 인해 상업ㆍ농업 등 여러 가지 생업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삼군영 군인들의 활동은 수도 한양이 도시로서 기능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한양을 지키는 군인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생업으로 삶을 영위했던 새로운 형태의 도시민이었고, 한양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함으로써 한양이 도시로 역할하게 하는 존재였다.
이번 전시는 지난 12월 4일부터 내년 3월 21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운영 방침에 따라 별도 공지 시까지 사전예약관람제로 운영한다. (문의 02-724-0274)
관람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3회(10-12시/ 13-15시/ 16-18시)이며, 회당 예약은 100명, 현장 접수 50명 이내로 관람할 수 있다. 공휴일을 뺀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 예약은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할 수 있다.
이번 전시<한양을 지켜라> 외에도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에서 다양한 기획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세대 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 청계천박물관 <미디어아트X세운상가>, 한양도성박물관 <광희문, 수구문, 시구문> 등 기획전시를 12월에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museum.seoul.go.kr)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세대 공감-최달용의 서울살이>는 해방둥이 서울사람 최달용의 학교ㆍ직장ㆍ혼인 생활 등을 사회학자 시선으로 1950~70년대의 서울살이를 공감해 볼 수 있는 전시다. <미디어아트X세운상가>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와 아트(Art)의 접점에 있는 세운상가의 기술력을 집중 조명한 전시다. <광희문, 수구문, 시구문>은 조선시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도성의 동남쪽 소문(小門) 광희문의 역사와 변화상을 담은 전시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museum.seoul.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문의: 02-724-0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