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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어서와, 우리 그림은 처음이지

우리 미술, 조금씩 그려보고 싶게끔 하는 책
[서평] 《우리 그림, 그려볼까요?(신하순ㆍ최혜인ㆍ최은혜ㆍ안지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우리, 그림 그린 적 많아도 우리 그림, 그린 적 정말 없다. 다들 지난 시절을 추억해보면, 주로 학교와 일상에서 그렸던 그림은 서양화일 거다. 박물관에 가서 우리 그림을 본 적은 있겠지만, 보통 ‘수묵화’, ‘문인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선비의 고고한 기품, 범상치 않은 위엄 때문에 뭔지 모를 부담감을 느낀 독자도 많을 법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하순ㆍ최혜인ㆍ최은혜ㆍ안지연이 함께 쓴 《우리 그림, 그려볼까요?》는 우리 미술에 관심을 두는 것은 물론, 조금씩 배워보고 싶게끔 만드는 책이다. 우리 미술에 대해 알고 싶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의 저자 네 명이 각자 자신의 특기를 살려 한 분야를 소개한다. 우리 그림의 대표적 장르인 수묵화, 채색화, 산수화, 문인화가 그것이다. 각 장에는 그림을 그리기 전 생각해 보아야 할 점, 재료 소개, 제작 과정이 담겨 있어 친근한 미술 선생님이 설명해주는 듯, 우리미술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첫 번째 주제 <수묵화를 그려볼까요?>에서는 작은 점에서 큰 점으로, 가는 선에서 굵은 선으로 먹의 번짐과 흐름을 경험하면서 최대한 쉽고 편안하게 수묵화를 시도해볼 수 있도록 했다. 수묵화를 그리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로 무궁무진한 먹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제 점과 선을 두루 사용해서 수묵화를 그려봅시다. 먹의 농담과 그리는 속도를 조절하여 다양한 점과 선을 이용해 보세요. 진하고 흐린 먹을 교대로 사용해 가까운 산과 멀리 떨어진 섬, 그리고 잔잔한 바다를 그렸습니다. 이번에는 묵직한 먹으로 바위에 둘러싸인 암자를 표현했네요. (p.62)

 

 

 

두 번째 주제 <채색화를 그려볼까요?> 에서는 우리 고유의 색깔인 오방색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채색화 그리기에 사용하는 재료, 채색화로 주로 그리는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색감이 범람하는 시대, 우리 그림은 튀지 않고 속으로 스며들며, 조화롭게 어울리는 은은한 색감이 많다.

 

색을 칠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먹으로 그린 후 먹선이 비칠 만큼 연하게 채색하는 담채화와, 색을 여러 번 겹쳐 칠하며 진하게 채색하는 진채화가 있습니다. 청록색 계열 그림 중심으로 담채화와 진채화를 구별해 볼까요? 이 그림에서는 색깔을 연하게 칠해 맑고 부드럽게 퍼지는 푸른 기운이 은은한 생명력을 전하는 느낌입니다. … (p.70)

 

 

 

그렇다면 색을 여러 번 겹쳐 진하게 사용한 진채화는 어떤 느낌이 들까요? 이 그림은 섬이 있는 고요한 바다 풍경으로 바다를 칠한 푸른 물감을 여러 번 반복해 칠했습니다. 잔잔한 물결을 깊은 바다의 무게감만큼 수많은 붓질로 표현하고 있네요. 겹쳐 칠하면서 물감이 번짐이 줄어들고, 물감은 종이 위에 견고하게 올려진 느낌입니다. (.p.73)

 

 

세 번째 주제 <산수화를 그려볼까요?>에서는 역사 속 유명한 산수화와 더불어 오늘날의 현대적 산수화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산수화’가 말 그대로 산과 물을 그리는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소재가 다양해져 도시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다양한 채색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전통적인 산수화에 현대적인 소재를 함께 그려 넣은 작품도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그림은 전통적인 산수화에 현대적인 소재를 함께 그려 넣은 작품입니다. 전통적인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산의 모습을 배경으로 앞에는 현대적인 건물과 자동차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p.122)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가요? 앞에서 본 그림과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이 그림은 조선시대 화가 정선의 작품입니다. 두 그림이 구도와 표현법에 있어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그림에서 보이는 중앙의 큰 산이 현대 화가의 그림에서는 아파트로 변하고, 흐르는 물은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로 변해 있는 것이 다르지요. (p.123)

 

네 번째 주제 <문인화를 그려볼까요?> 에서는 문인화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었던 선조들처럼, 현대적인 의미의 문인화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을 담았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 고결함을 상징하는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나 자연 풍경을 그린 후, 그림 옆에 쓰는 글인 제발(題跋)을 쓰고, 인장을 찍는 과정이 쉽고 친근하게 소개되어 있다.

 

다음 그림을 함께 볼까요? 끝이 뭉툭하게 그려진 난 그림 위에 글이 여럿 쓰여 있네요. 이 그림에 글을 남긴 사람은 모두 몇 명일까요? 이 묵란은 명성황후의 조카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문인화가 민영익이 그렸습니다. 나라를 잃으면 난을 그리되, 뿌리가 묻혀 있어야 할 땅은 그리지 않는다는 고사에 따라 뿌리가 드러나게 그려진 노근란입니다. 이 그림에는 당시 그림과 글씨에 뛰어났던 네 명이 글을 남겼습니다. ‘심전 안중식이 보다’라는 간단한 감상 기록에서부터 나라 잃었음을 표현한 그림에 자신의 애통함을 보태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글귀를 인용하여 그림을 보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합니다. (p.170~171)

 

 

선비들이 즐기는 취미이자 자기 수양의 도구로도 쓰인 문인화처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선비들의 일상이었다. 우리 그림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 시를 쓰고, 멋진 인장까지 찍는다면 그것이 바로 한 폭의 문인화가 아니겠는가. 날씨가 화창한 날, 자신만의 화첩을 끼고 산수화를 그리러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그냥 부담없이 우리도 우리 그림, 그려볼까?

 

《우리 그림, 그려볼까요?》, 신하순ㆍ최혜인ㆍ최은혜ㆍ안지연,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