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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30여 년, 국악방송으로 교포들 마음 위로하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0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1980년대 초, LA지역에서는 처음 유선방송을 통해 국악방송을 시작했는데, 이때 김동석은 매일 30분 정도 국악을 소개하였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1980년대 말, <라디오 코리아>란 이름의 한국어 공중파 방송에서 “김동석의 우리가락 좋을시고”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도 방송관련 이야기를 계속한다. 당시 그의 국악방송은 이민생활로 힘들어진 가족이나 이웃 서로에게 희망찬 메시지를 전달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고 전해진다. 국악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교포들은 국악 대부분이 마치 불교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일까 특히 기독교인들은 의식적으로 국악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는 그의 황당한 경험담 하나를 소개한다.

 

“70년대 초, <8.15 경축음악제>를 마침 모 교회 본당에서 열게 되었어요. 경건한 분위기를 위해 첫 곡으로 영산회상 중에서 <염불>과 <타령>이라는 곡을 연주한다고 순서지에 넣었는데, 교회의 목사라는 분이 펄펄 뛰는 거예요. 이 음악들은 불교음악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연주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제지하고 나서서 음악회 자체를 취소하게 됐어요. 불교의 음악으로 시작되었지만, 벌써 오래전에 조선에서는 세속의 음악으로 널리 연주되어 온 음악이라고 설명해도 완강하게 거부를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악곡 이름을 빼고 연주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어요.”

 

 

70년대라고 하면, 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은 하나둘이 아니어서 글쓴이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 70년대 말, 사물놀이팀이 창단 연주를 한 후, 그 인기가 폭발적이어서 나는 이들을 초청, YMCA 대강당에서 시민강좌를 열려고 하였다. 그런데 장고나 북 같은 악기들은 예부터 무악(巫樂)과 관련되어 쓰인 악기여서 당 회관에서는 연주가 ‘된다’, ‘안 된다’의 논쟁 속에 휘말리게 된 것이었다. 설득 끝에 연주회는 성사되었지만, 서양의 드럼은 연주가 자유롭고, 북이나 장고와 같은 전통악기들은 제지를 받았던 씁쓸한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방송 이야기로 돌아간다.

 

1980년대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 뒤로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연을 하러 가는 한국인 무용단이나, 국악 연주단 등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 당시 <라디오 코리아>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국악을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누어 장르별로 친절하게 소개해 주었고, 한 때에는 “원더풀 투나잇”이란 제목으로 매일 밤 1시간 동안 시사대담과 함께 소개하여 많은 한인은 이 방송을 매우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예술단체들의 면면이나 전공 분야, 음반 소개나 신변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이 인기가 있었다. 가능하면 연주자들을 스튜디오에 직접 초청하여 그들의 실연과 대담, 등을 소개해 주었는데, 많은 교포 청취자들이 즐기고 원하는 프로그램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글쓴이도 여러 차례 김동석과 밤늦게까지 함께 방송한 기억이 있다. 특히, 2001년부터 2013년까지 수차례에 걸쳐 <UCLA 한국음악과>와 서울 <전통음악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 Korean Music Symposium》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동행하였던 인간문화재급 실연자들이나, 국악 교수들을 초대하여 실연(實演)과 함께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송내용은 그다음 날 곧바로 교포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마련이다. 공연을 앞두고 식당이라든가 공연장소로 이동하면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교포들이 방송을 통해 공연일시와 장소를 알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학생은 어젯밤, 방송을 듣고 알게 된 집박(執拍)이란 말이 재미있었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집박>이란 ‘박을 잡는다’는 뜻이다. 박(拍)이란 박달나무 조각을 모아서 만든 타악기로 지휘자가 합주의 시작과 중간, 또는 끝남을 알릴 때, 치는, 곧 지휘를 뜻하는 말이다. 마치 서양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봉을 잡는다는 말과 같다. 서양음악 합주에서 지휘봉을 잡은 지휘자는 객석을 등지고 서서 연주자들을 지휘하지만, 전통국악의 지휘는 연주자들과 객석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무대 왼편(객석에서 보면 오른쪽) 앞에 서서 박(拍)을 쳐서 지휘하는데, 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지휘를 하는 것이다.

 

김동석의 회고담이다.

 

“1989~2013년까지 24년 동안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라디오코리아>를 통해 방송으로 국악을 소개해 왔어요. 이곳 LA에는 <라디오 코리아> 외에 한국일보사에서 운영하는 <라디오 서울>도 1992년에 한국일보 사옥에서 개국하여 그 이듬해부터 몇 년 동안 FM 방송을 하다가 AM 방송으로 복귀했지요. 나는 ‘김동석의 국악의 향기’란 제목으로 2시간짜리 국악방송을 주말마다 진행했어요. 주로 젊은 국악인들의 작품이나,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새로운 국악 창작품들, 또는 판소리 전판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2013년까지 진행하다가 학교 은퇴와 더불어 방송국 일도 접게 되었어요. 30여 년 동안 두 방송국에서 국악을 통해 함께 즐기던 장수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두 방송국 모두 현지의 국악방송을 중단하고 있어요. 안타까울 뿐이지요. 방송을 통해 한인 교포들이 우리의 국악을 점차 좋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