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체기란 보통 과식하거나 잘못 먹었을 때 소화불량 정도를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소화기관들의 운동저하, 기(氣)막힘, 소화액과 소화즙의 분비저하 등 모든 소화기관의 이상증상을 포괄한 개념이다. 곧 소화와 연관된 장부조직이 정상적으로 운동 또는 순환하지 못하고, 소화액의 분비와 흡수가 원활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 세포 단위로 정의하면 세포가 자기 자신의 활동성을 잃어버려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성을 상실한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체기가 단순히 소화기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하는 의문이 있다. 온몸의 세포는 모두 기본적인 세포 자체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 있고, 일정한 운동성과 수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곧 일정한 리듬과 온도, 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이러한 기본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 중에 체기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곧 느려졌을 때 표현하는 용어이며 모든 세포는 체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한번 체한 경험이 있는 세포는 다시 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체하려는 상황이 다가오면 이를 방비하기 위하여 온 힘을 써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므로 체기란 통상적으로 소화기관의 운동성 정체를 말하지만, 냄새에 체하는 호흡기관의 정체도 있으며 오장과 온몸의 체기도 있는 것이다.
1. 우리 몸의 모든 기관과 세포는 기억이 있다.
많은 분이 일상생활에서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경험을 한두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복숭아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요.”“나는 몇 년 전 닭고기를 먹고 한번 토한 후 달고기를 먹으면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돼요.”
보통은 음식과 관련이 많으나 특정 냄새, 특정 상황, 어떨 때는 특정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긴장되고 위축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동상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한번 동상을 경험한 세포는 특정 계절이 되거나 특정한 온도나 물에 접촉하면 세포가 싸늘하게 차가워지거나 열이 발생하는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생활 중 먹는 것의 불편과 장애, 몸의 긴장이나 위축 등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작용이다. 음식이나 다른 것의 영향으로 몸에 손상을 입을 때 다시는 손상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2. 몸이 기억하며 방어하는 왜곡된 기억들
① 반복적 체기
식욕도 왕성하고 소화능력도 뛰어나 대부분 음식을 배불리 먹어도 거뜬한 분인데도, 특정음식을 먹거나 특정상황에서 식사를 하면 체하거나 장염으로 구토, 설사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전에 맛있게 먹던 음식인데 어느 순간부터 별로 먹고 싶지 않고 먹으려고 생각만 해도 속이 이상해지면서 식욕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특히 상한 음식으로 체하거나 식중독을 일으킨 적이 있으면 유독 심하다. 이것은 몸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음식을 거부하거나 위장에서 음식을 빨리 제거하기 위하여 배출하려는 몸의 방어 작용인 것이다.
② 급성 두드러기와 특정음식 두드러기
우리가 경험하는 급성 두드러기는 특정음식(특히 단백질)을 소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흡수했을 때, 몸에 유입된 거대한 이물질(특정음식)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키는 면역반응이다. 보통 3일 정도 금식을 하거나 모든 단백질을 금하면 치료된다. 이런 경우 소화와 흡수 왜곡의 틀이 굳어진 경우인데,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고 대중적으로 공유되면서 이루어진 언어가 ‘두드러기’에 대한 사회적 사용이다. 곧 “나는 저 사람만 보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 같은 말이 일상 속에 쓰이고 있다.
③ 생각만 해도 체할 것 같고 몸서리쳐지는 음식이 있다.
음식을 먹는 모습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거대한 이물질이 몸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이물질을 내 몸에 맞고 필요한 구조로 바꾸기 위하여 몸 장부의 절반이 열심히 소화, 흡수, 대사의 과정을 밟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 몸에 부담이 없는 성분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몸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
유입과정에 사레에 걸려 혼쭐이 났거나, 특정성분으로 인해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던 경험이 있는 경우 우리 몸은 오관의 감각과 머릿속의 기억, 몸의 기억을 모두 동원해서 거부반응이라는 작용을 통하여 몸을 보호한다.
④ 마음과 정신도 체기의 흔적이 있다.
우리가 흔히 트라우마라고 하거나 울화가 쌓였다. 한이 맺혔다. 기분이 나쁘다 등등은 마음과 정신에 난 상처와 흔적을 말한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와 정신의 흔적은 마음과 생각으로 풀어야 하지만 우리 몸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마음이고, 의지대로 안 되는 것이 정신이다. 다행히 우리 몸은 몸과 마음이 톱니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와 흔적이라도 육체를 잘 정리해 나가면서 풀 수 있다.
3. 가와사키병에 대한 경험
한의원 진료 중에 가와사키병을 처음 접한 것은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문병하면서 이루어졌다.
가와사키병이란 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으로, 전신에 다양하게 침범한다. 피부, 점막, 임파절, 심장 및 혈관, 관절, 간 등에 기능 이상을 가져올 수 있고, 위장관 장애, 담낭수종, 드물게 뇌수막 등의 염증이 나타날 수 있는 심각한 질환이다.
아이의 상태가 3일째 발열이 지속하고 피부 발진이 드러나 가와사키병이 맞기는 하는데, 직접 살펴본 모습은 체한 모습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먹은 것을 점검하니 별로 먹은 것이 없고 직전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고 했는데 얼굴이나 진맥은 체한 것이 안 풀린 상황이라 가지고 있던 소화제를 주면서 가볍게 마사지해주고 왔다. 이후 장을 풀어주어 점막순환과 정맥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한약을 처방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소화제를 복용한 후 구토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토한 내용을 물어보니 3일 전에 먹은 라면을 토했다고 한다. 아이가 토한 후 열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정상으로 돌아갔다. 한편으론 수긍이 되면서 그동안 아이와 엄마, 의사가 몰랐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와사키와 체기와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이후 가와사키병을 앓았던 아이들을 진료할 때마다 아이의 과거의 상황을 꾸준히 살펴 체기와 연관이 있다는 것, 더불어 오장(五臟)도 체하는구나 하는 결론을 얻었다. 곧 소화기관의 체기가 간기능(肝機能)의 정체를 불러오고, 간기능(肝機能)의 정체가 혈관과 심장에 과부하를 준 상태 가운데 하나가 가와사키병이라는 차원에서 치료하게 되었다.
4. 몸의 기억을 최기화 하라.
① 몸은 스스로 바로 잡으려 끊임없이 노력한다.
몸과 마음의 정체와 흔적들로 발생한 왜곡을 우리 몸은 스스로 정리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람의 기억이 희미해지듯 몸의 기억도 점점 엷어져 저절로 사라지는 방어작용이 있는 것이다. 다만 쉽게 정리하지 못할 경우는 방해인자가 있거나, 힘이 달려서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해인자의 총칭을 노폐물이라 하고, 정체된 상태를 기체증(氣滯症)이라고 한다. 노폐물을 제거하고, 기체증을 풀어내고 몸에서 정리, 제거, 훈련을 담당하는 부신과 비장의 기능을 정상으로 바로 잡아 몸이 스스로 정리하는 초기화를 도와주도록 하자
② 인체의 전가의 보도 기(氣)를 활용하자.
한의학의 치료는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의 중간 가교로 기(氣)를 활용한다. 기운의 흐름이 원활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능이 활발해진다. 곧 기의 흐름을 이용하여 마음과 정신의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고, 육체의 기능을 활발하게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지간한 급성 체기는 침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으며 만성적이라 하여도 한약이나 침 치료로 풀어낼 수 있다.
③ 수승화강은 건강의 시작과 끝이다.
우리 몸의 원활한 기운 순환을 한방에서는 수승화강이라 하였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운이 원활하게 잘 순환되는 것, 양방으로 논한다면 혈액의 순환과 신경의 전달이 매끈하게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의 기의 순환 고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육체의 앙금이건 정신의 앙금이건 여기에 동조되거나 분리되면서 정체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