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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ㆍ김대락, 그들은 어떻게 망명했나?

경북인의 만주망명 110주년 기획 보도<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과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관장 정진영)은 만주망명 110돌을 맞이하여 모두 12회에 걸친 기획 보도를 진행하고 있다. 제2편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문전옥답을 버리고 매서운 한파를 뚫으면서 만주 망명길에 오르는 내용이다.

 

 

 

당시 망명길에 관한 내용은 일기와 회고록 등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자료로 고성이씨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서사록(西徙錄)》이 있다. 《서사록》은 음력 1911년 1월 4일부터 4월 13일까지의 망명과정을 담고 있는 자료이다. 만주망명을 결심하게 된 이유와 전답 등을 처분하고 짐을 꾸리는 준비과정 등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또 백하 김대락이 쓴 《서정록(西征錄)》 역시 만주망명을 위해 서울에서 의주행 기차에 올라타는 내용부터 만주에 도착하여 정착해가는 초기 망명생활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상룡 선생의 《서사록》과 김대락 선생의 《서정록》에 따르면, 당시 만주망명길에 오른 일행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 안동에서 추풍령역까지는 도보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 서울로 간 뒤 경의선을 통해 서울 - 평양 - 의주 - 신의주로 이동한 것으로 돼 있다. 그리고는 매서운 한파에 얼어붙은 압록강을 도보로 건너 서간도 환인현과 유하현 등지로 들어가 본격적인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정녕 백 번 꺾이더라도 굽히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서사록》 서문에 쓴 말이다. 암울했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던진 숭고한 정신을 드러내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